투전이란 게 웬 놈의 물건이라

조선 시대의 노름

도박, 곧 노름은 돈이나 돈에 상당하는 재물을 걸고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이 승부를 겨루는 방식도 아주 다양해 예컨대 가위 바위 보만으로도 돈을 걸고 노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종목은 있기 마련오늘날 한국 사람이 가장 즐기는 노름은 ‘고스톱’이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종류의 노름이 있었는데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바둑, 장기, 쌍륙, 골패, 투전, 윷놀이 등을 가장 유행하는 노름 종목으로 꼽았다. 이 중에서 가장 중독성이 강한 것은 ‘골패’와 ‘투전’이었다.

땅 중 제일은 ‘장땅’이라
골패와 투전의 놀이법

골패는 가로 1.2~1.5센티미터, 세로 1.8~2.1센티미터의 납작하고 네모진 검은 나무 바탕에 상아나 짐승뼈를 붙이고 여러 가지 수를 나타내는 크고 작은 구멍을 새긴 것으로 모두 32쪽이다. 노는 방식은 꼬리붙이기, 포, 여시, 골여시, 쩍쩍이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주 복잡하여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투전은 숙종 때 조선 최고의 부자였던 역관譯官 장현張炫이 중국에서 가져온 마조馬弔란 노름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투전은 80장60장짜리도 있다의 종이 쪽지로 구성된다. 손가락 굵기만 하고, 길이는 15센티미터쯤 되는 종이 쪽지의 한 면에 사람, 물고기, 새, 꿩, 노루, 별, 토끼, 말 등의 그림이나 글을 흘려 적어 끗수를 표시한다. 같은 그림글자가 열 개씩 모여 80장을 이루는데 이것을 팔목八目이라 부른다. 투전은 사용하는 투전목의 종류와 참가인원에 따라 돌려대기, 동동이, 가구, 우등뽑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쳤다고 한다.

이 중 돌려대기 방식을 소개한다. 보통 40장의 투전목을 쓰는데, 선수투전목을 돌리는 사람가 판꾼도박에 참여하는 사람 다섯 사람에게 한 장씩 돌려 모두 5장을 주면, 판꾼은 3장으로 10, 20, 30을 만들고, 나머지 2장의 숫자로 승부를 결정한다. 3장으로 10의 배수를 만들지 못한 사람은 실격이다. 나머지 2장의 숫자가 같으면 ‘땅’혹은 ‘땡’이라 하는데, 이 중 ‘장땅’이 가장 높고 9땅, 8땅의 순서로 등급이 낮아진다.

‘땅’이 아닌 경우에는 2장을 합한 것의 숫자로 승부를 겨룬다. 2장을 합한 것의 숫자가 9일 경우 ‘가보’라 하여 가장 높이 치고, 그 다음은 8,7의 차례로 등급이 내려간다. 가보의 경우에도 1과 8은 ‘알팔’, 2와 7은 ‘비칠’이라 부르고, 5가 되는 수 중에서 1과 4는 ‘비사’라고 부른다. 2장을 더한 수가 10처럼 한 자리 수의 끝이 0이 되는 경우는 ‘무대’라고 하여 가장 낮은 끗수가 된다. 아마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돌려대기 투전이 화투로 치는 ‘도리짓고땡’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도리짓고땡’이나 ‘섰다’는 투전을 치던 방식이 화투로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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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패. 견 소재의 두루 주머니에 32개의 골패가 담겨있다.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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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전. 103장의 투전지가 보관집에 담겨있다.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심심풀이로 시작했다가
패가망신하여 울상 짓는 노름

골패와 투전 중에서 더 널리 유행한 것은 투전이었다. 수입된 지 백 년도 되지 않아 투전은 나라 전체에 퍼졌다. 정약용은 이렇게 지적한다. “재상, 명사들과 승지 및 옥당 관원들도 투전으로 소일하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소나 돼지 치는 자들의 놀이가 조정에까지 밀려 올라왔으니 정말 한심한 일이다.” 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 재상과 승정원·홍문관 벼슬은 조선시대에 최고로 꼽았던 자리다. 그런 사람들까지 투전으로 날을 보낸다는 것이다. 실제 영조 때 우의정을 지냈던 원인손元仁孫은 투전목을 한 번만 훑어보고 다 외는, 조선 최고의 타짜였다고 한다.

투전은 대개 심심풀이로 하는 노름이었지만, 점차 사회문제가 되었다. 투전으로 패가망신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정조 15년1791 9월 16일 사직司直 신기경愼基慶은 상소를 올려, 잡기雜技, 도박의 피해는 투전이 가장 심해서, 위로는 사대부의 자제들로부터 아래로는 항간의 서민들까지 집과 토지를 팔고 재산을 털어 바치며 끝내는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게 되고 도둑놈 같은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면서, 투전을 금하고, 투전목을 판매해 이익을 취하는 자 역시 엄격히 처벌할 것을 건의했다. 정조 역시 같이 개탄했고 법으로 투전을 금했지만, 투전의 유행은 결코 그치지 않았다.

정조 때 인물인 윤기尹愭란 분은 「투전꾼投牋者」이란 시에서 투전에 미친 사람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촌사람 일마다 싫증이 나고/ 좋아하는 건 오직 투전뿐이네/ 종일 낮도 잊고 밤도 잊은 채/ 노름친구 불러서 돈 내기가 일이로다/ 헝클어진 머리에 시뻘건 눈이며/꼬락서니 보자면 미친놈이 따로 없다/ 주머니 속 돈 바닥이 나고/ 옷가지조차 못 걸치면/ 빚을 내고 전당을 잡히고/ 사기도 치거나 좀도둑질도 마다 않네” 밤도 낮도 잊고 투전에 몰두하다가 돈을 다 잃고 나면 빚을 내고 전당을 잡히고 하는 것은 동서고금 다를 것 없는 노름꾼의 행태다.

노름꾼의 아내는 통곡에 욕을 섞어 울부짖으며 남편에게 하소연한다. “투전이란 게 웬 놈의 물건이라/ 내 속을 이렇게 끓인단 말이오?/ 도둑놈처럼 내 치마를 벗겨가고/ 솥까지 팔아먹고/ 그때부터 연사흘을 굶었는데/ 한 번 가더니 다시는 안 돌아왔소/ 밤중에 혼자 빈 방에서 한숨만 쉬는데/ 어린 것들은 울면서 잠 한 숨 못 잤더랬소”

노름꾼은 아내의 말을 듣더니, 눈을 부릅뜨고 갑자기 앞으로 썩 다가 앉으며 소리를 지른다. “재물이란 건 있다가도 없고/ 밝은 달은 찼다 기울었다 하는 법이지/ 내 이미 어른이 되었으니/ 어찌 여편네 말을 듣고 뉘우친단 말이야?/ 어머니 아버지 어쩌지 못했고/ 관청도 어쩌지 못했거늘!/ 여편네란 원래 잔소리를 좋아하는 법/ 내 주먹 맛을 한 번 볼 테냐!” 이 말을 마치고 노름꾼은 항아리를 걷어차고 뛰쳐나간다.

심심해서 동전 몇 푼을 걸고 소일거리로 하는 노름이 아니라면 모든 노름은 불행의 씨앗이다. 이건 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노름은 결코 손을 대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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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광범한 지적 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풍속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한문학을 쉽게 풀이한 저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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