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서른 세 개의 마을을 위하여

특별전 <우리 살던 고향은-세종시 2005 그리고 2015>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2006년 그 시의 이름은 ‘세종시’로 붙여졌으며 2010년 12월 ‘세종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했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에는 각 정부부처가 서울로부터 이전을 시작했고, 본격적인 공무가 시작됐다. 행정이 중심이 되는 기능성 복합 도시가 비로소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을 터전으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특별전 <우리 살던 고향은-세종시 2005 그리고 2015>를 기획한 김호걸 학예연구사를 만났다.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조사의 시작, 세종시

 

세종시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김호걸 학예연구사이하 김호걸_2005년과 2015년으로 나뉩니다. 2004년, 신행정수도 개발을 위해 충청남도 연기군의 3개 면과 공주시,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이 선정되었습니다. 기존의 마을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완전히 이주를 하고, 남아있는 모든 집이나 구조물 등은 철거를 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이었죠. 그 곳에는 33개의 법정리, 행정리로 따지자면 60개 정도 되는 마을, 자연 마을로 따진다면 더 많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들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 국립민속박물관의 판단이었습니다.

그 지역은 혈연관계에 있는 동성의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 ‘동족마을’이 많이 존재한 곳입니다. 조선 중종 조 성균관 진사 장원급제 한 진우가 모함으로 참형을 당하고 그의 아들이 새로이 정착해 뿌리내린 여양 진씨는 반곡리 인구의 70% 가량을 차지했고, 고려말 충절로 유명한 임난수 장군의 부안 임씨 집안을 비롯한 다양한 가문이 이 곳에 살았습니다. 오랜 역사와 동족마을이라는 문화의 독특한 점이 세종시 조사를 선택하게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2015년에 다시 이곳의 조사를 벌인 이유는, 세종시는 결국 무에서 유를 창조한 완전히 새로운 도시가 되었고, 기존에 살던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쪽 지역과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유입된, 원주민과 전입자가 혼합되어 살아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2005년에 진행했던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당시 원주민들은 현재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추적조사를 했습니다. 민속 조사에서 한 지역을 10년 후에 다시 찾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국가기관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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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당시, 10년 후인 2015년에 다시 조사할 거란 계획이 있었는지.

김호걸_조사자인 저는 그때 당시 향후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사실 이 조사는 우리 관의 사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2006년부터 지역민속문화의 해 사업2007 제주민속문화의 해이 시행되면서 전국 각 도의 민속문화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1차년도에는 지역의 민속 문화를 조사 발굴하고, 거기에서 발굴된 성과를 토대로 전시, 교육, 행사 등을 통해 승화시키는 것이 2차년도의 과업이었어요. 첫 해 제주도를 시작으로 경기도까지 전국 광역 도지자체를 모두 마치고 난 뒤 이 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어서 광역시로 계속 추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결정에 따라 첫 번째 지역으로 선정된 광역시가 바로 세종시였습니다.

민속조사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

김호걸_사실 지역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민속조사 방식의 틀이 형성된 것이 2005년부터 시행한 세종시 민속조사였습니다. 민속조사는 단기간 출장을 통해 조사를 하는 방식도 있고, 현지 사람들과 적어도 몇 개월 이상 어울리고,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조사를 하는 상주常住조사 방식도 있습니다.

우리 관에서 처음으로 현지 상주 조사를 시행한 지역이 바로 세종시였어요. 조사팀이 2팀으로 나누어졌는데, 1팀은 반곡리 조사를 했고, 2팀은 20여 명의 연구원이 2005년 9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마을에 살면서 나머지 30여개 마을의 민속조사를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문화부터 세시풍속, 의례, 신앙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살폈죠.

반곡리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살림살이조사를 시도했습니다. 2006년 발행한 <반곡리: 김명호 씨댁 생활재 조사보고서>에는 그 댁 안의 모든 물건들, 차, 소지품 등 갖고 있는 물건들을 파악하고 물건마다 어떤 이야기가 얽혀있는지를 담았어요. 상주조사와 살림살이 조사는 이후 지역민속문화의 해 사업에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범위가 넓어서 모든 것을 기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좀 더 집중하는 분야가 있는지.

김호걸_민속조사는 한 마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 지역의 의식주를 비롯한 물질문화, 생업이나 의례, 신앙 등 민속지에서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함께 조사합니다.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기 보다 종합적 측면을 살펴보는 거죠.

처음 반곡리를 대상으로 살림살이 조사를 했을 때, 과연 이 조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아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조사가 각 지역별로 10여 년간 이어진 지금, 조사를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까지 전국의 농촌, 어촌, 그리고 다문화 지역 등은 과연 어떤 물질문화를 영위하고 살았을까에 대한 대답이 이 조사 결과에 들어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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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마을과 함께 시멘트 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2005년,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세종시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사 내용 중 어떤 면을 담아내고 싶었는지.

김호걸_이 지역은 지역 원주민들의 땅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땅값도 보상받았고, 이주민으로서 여러 가지 혜택도 받았고, 저마다 각자의 지역으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그들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비자발적인 이주입니다.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문화와 역사는 남겨져야 하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것 외에는 모두, 완전히, 다 헐렸습니다. 이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주민들이 이뤄온, 가져온, 이어온, 영위한 문화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평생 농촌에서 농사만 짓던 분들이, 매일매일 논밭에서 일하던 분들이 지금이라고 가만히 집안에서 지내지만은 않으실 텐데, 그럼 그분들은 이제 무얼 하실까요? 고령이라 직업이 없으신 분도 많고, 일부는 환경미화, 아파트 경비 등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과연 그분들이 속한 곳에서 인식되고 존중 받고 있을까요?

세종시 전시를 하게 된다면, 그리고 이 전시가 세종시에서도 열린다고 한다면 저는 이 지역에 원래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문화를 갖고 있었는지, 그들의 역사와 존엄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비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나야 하고, 고향을 잃어야 했던 이들의 아픔은 누가 헤아려 줄 것인가. 누군가는 보고, 기억하고, 헤아려주어야 하니까요.

전시된 유물이나 자료, 코너 중에 눈 여겨 봐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김호걸_‘소중한 물건들’ 코너입니다. 그 코너는 이주민들이 이주를 앞두고 이것만큼은 버리지 않으리라, 챙겨온 물건을 소개합니다. 어르신들은 ‘예전 어른들이 해 온 것이라 절대 못 버린다. 내 며느리가 이걸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준 것이라 난 못 버리겠다’고 허름한 쌀바가지를 가지고 계세요. 고향을 잃고, 고향을 대신할, 그곳에서의 삶과 부모 자식의 기억이 어려있는 소중한 물건이니까요. 지금 이주민들 댁에 보관 중인 실제 위치까지 고려해서 가능한 현장의 의미를 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하나는 관의 역사와 민의 역사를 비교하며 살펴보는 방식입니다. 역사는 정부에서 편찬하는 관의 기록이 있고, 일반인들이 남겨놓은 민의 기록이 있습니다. 연기지 연성지, 공주목, 연기현지 등 지방 현지가 관의 기록이고, 태양12경, 을사년일기 등은 지역의 사람들이 기록한 민의 기록입니다. 예를 들어 을사년일기에는 누구와 교류했고, 어떤 일을 했고, 세시절기는 어떻게 챙겼으며, 지진이나 가뭄 등 매일 날씨는 어땠는지 등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어요.

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의 지도에는 향교가 어디 있고, 산이 어디 있는지를 나타내지만 석교리의 한 족보에는 합강리 황우산은 어떻고, 양화리 전월산은 어떠한지를 그린 ‘명당도’가 있습니다. 지역 사람들이 그들의 기준으로 인식한 지역의 모습을 담은 거죠. 두 지도는 목적이 다르지만 지역의 생활사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 전시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을까.

김호걸_전시된 자료들의 80~90%가 현지 자료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엮기 위해 다른 곳에서 대여하거나 비슷한 유물로 채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고,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에요. 전시물을 소개하는 레이블에 소장처 외에 마을 이름도 적어놓았어요. 이 현판은 어느 마을에서 왔다, 라고. 아마 세종시에서 전시를 할 때에는 이주민들이 ‘아, 이게 우리마을에서 왔구나!’ 하실 겁니다. 그들이 경황 없이 떠나오면서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마을의 물건들을 여기에서 보고, 고향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김호걸_실은 저 역시 그 지역에 살았던 현지인입니다. 2005년 조사를 마치고, 2015년 다시 조사를 하기까지, 그 비워졌던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척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나마 꾸준히 조사를 이어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만일 조사가 계속 이루어졌다면 조사 내용도 더 충실했을 테고 전시 역시 좀 더 많은 자료로 더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특별전 <우리 살던 고향은-세종시 2005 그리고 2015>은 2016년 7월 27일부터 10월 17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1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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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우리 살던 고향은-세종시 2005 그리고 2015>를 기획한
김호걸 학예연구사
글_ 편집팀

3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김호걸 학예사님의 세종시 원주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합니다.
    주민들께서 갖고계신 유물들.
    민속박물관에 기증해 주시면 두고두고 민속 자료 연구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 사라진 마을의 역사와 유무형의 흔적을 찾고 보존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는 뜻 깊은 전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과거를 찾아내고 현재에 담아내고 보존하려는 전시가 쭉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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