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언어에서 문화로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문화 번역의 시대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정밀하고 정확하게 옮기는 번역에서 문장이 가진 의미와 뜻, 즉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문화를 반영해 번역하는 작업이 가치를 발하고 있다. 우리가 민속을 말할 때 그 시대의 문화가 잘 반영된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번역은 그 문화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문학번역원 김성곤 원장을 만나 ‘번역’이라는 언어 속에 녹아 있는 문화, 그 문화가 전달하는 ‘민속’에 대해 들어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번역하며 산다

2016년 5월의 일이다.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맨 부커 상 국제상을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와 그의 작품을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가 공동 수상했다. 외국의 수많은 작품이 번역되어 책장을 채우던 것이 일반적이었던 우리에게, 세계인이 우리 소설을 읽고, 공감하는 시절이라니. 놀라운 변화이다.

“어쩌면 우리 생활 자체가 번역일 수 있습니다. 상대와 이야기할 때 그의 표정이나 눈빛을 보면서 내적 통역을 한 후에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결국 번역은 삶의 일부이죠.”

김성곤 원장은 움베르트 에코의 말을 빌려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과 음악 또한 번역이 필요한데, 하물며 언어와 문화가 다른 두 나라가 서로를 바라볼 때에는 스스로 내적 번역을 거쳐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작가는 한 나라의 문학을 만들고, 번역가는 세계문학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만큼 작가와 번역가는 똑같이 중요하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이란 성서의 ‘바벨탑’과도 같아서 다른 언어에 적절히 대응하고 소통하며 상호 이해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작업이지요.”

누군가가 번역하지 않으면, 우리의 언어로 된 문학이 다른 나라에서 읽힐 방법이 없다. 그러니 원작만큼이나 번역의 수준이 좋아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번역서보다는 자신의 모어로 쓰여진 책에 먼저 손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번역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는 우선 원작이 좋아야겠지요. 영국기자가 저에게 물었어요. ‘한국 문학은 고통스럽고 어둡다고 알려져 있는데, 최근 변화가 있는가’라고. 젊은 세대들도 우리 문학이 가진 묵직함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하죠. 사람들에게 많이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과 어둠보다는 즐거움과 재미, 유익함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작이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제라면 좋겠지요. 소재는 한국적이되 주제는 세계적인. 이번에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경우, 현재 테러나 폭력, 인권 등 세계가 집중하는 이슈와 잘 맞닿아 있어요. 그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세계인에게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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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번역판. 두 사람은 멘 부커 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원작이 아무리 작품성이 좋고 한국에 대해 잘 그려내고 있다 해도, 번역이 좋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고, 김성곤 원장은 강조했다. 한 나라의 정서와 문화, 역사와 생활 등 모든 것을 내포한 것이 글이고, 책이다. 이것이 다른 나라에서 읽히기 위해서는 단순히 단어를 그 나라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 그 단어가 왜 쓰였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번역을 위해서는 작가의 작품만큼이나 번역가의 자질이 중요한 이유이다.

‘언어번역’에서 ‘문화번역’으로

그렇다면 좋은 번역이란 무엇일까.

“번역서가 만들어지던 초기에는 번역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 혹은 학자들이 교재로 쓰기 위해 직접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문학 작품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번역하게 되면 학문적 번역서가 될 위험이 큽니다. 다행히 이제는 한국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마음으로 하는 번역은 단순히 일로써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 기술력, 한류 돌풍 등 각자의 이유로 한국을 접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싶어서 스스로 좋은 작품을 찾아보고,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번역을 해 낸 결과물은 그저 마감과 시간에 쫓겨 겨우 완성한 번역과 같을 수 없다. 기계적인 번역과 마음을 다한 번역의 차이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번역이 ‘언어에서 언어로의 번역’이었다면 이제는 ‘문화에서 문화로의 번역’, 즉 문화번역입니다. 언어를 그대로 번역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문장이나 표현이 현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현재 번역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스 교수는 번역을 ‘집을 허문 뒤 그 자재들을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가 다른 해안에 다시 집을 짓는 일’이라고 정의했어요. 똑같을 수도 없고 똑같을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현지 풍토에 맞는 집을 지어야 좋은 집이 되는 것과 같이요.”

실제로 번역원에서는 최근 번역원고를 선정하는 심사 조건에 ‘원작에 충실할 것’이라는 조건을 제외했다. 원작에 충실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현지에 얼마나 친화력 있게 번역되었는가’이기 때문이다.

“좋은 번역을 위해서는 번역가가 뛰어난 문학적 감각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을 좋아하거나 혹은 한때 작가를 꿈꾸었던 사람의 문장력이 반영되면 글의 질이 달라지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작에 대한 애정입니다. 솔라스 교수의 말을 빌려 마치 군인이 애인의 편지를 품에 넣고 몇 번이고 꺼내보듯, 물리학자가 방정식을 풀듯, 음악가의 귀를 갖고 원작의 리듬과 멜로디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번역이 나옵니다.”

시작은 시선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만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번역’을 주제로 전시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 물었다. 번역의 시대적 변화에 대한 전시나 우리의 문학을 한국적인 것, 보편적인 것, 서구적인 것 등으로 나누는 전시 방법 등의 다양한 아이디어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시선의 차이’에 대한 전시였다.

“우리의 시각과 외국인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비교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은데요. 북미 아이들에게 우리 동화를 보여주고, 독서 감상문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참 많았어요. 청개구리 이야기는 마냥 청개구리를 탓하기 보다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며 키우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임을 엄마 개구리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감상이 있었어요. 선녀와 나무꾼에는 ‘사슴이 잘못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제 뿔을 내어줄 일이지 왜 다른 여자의 인생을 덥석 내어주는 것이며 나무꾼은 인생을 왜 이토록 감정적으로 사느냐.’라고 일갈했죠. 같은 글을 이토록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전시, 흥미롭지 않을까요?”

각 나라의 국립 박물관에는 그 나라의 국적자보다 외국인 관람객이 더 많기도 하다. 국립민속박물관도 마찬가지. 만일 이러한 전시가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들 역시 우리 문학에 대해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전시 소재를 발굴하기 위한 박물관 큐레이터의 노력처럼, 번역 역시 반짝이는 기획과 큐레이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김성곤 원장은 말을 보탰다.

“미국의 한 문학가가 <토지>의 서구 진출에 대해 ‘서구 독자에게 호소력을 갖추려면 내용을 압축해 번역할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일종의 기획이죠. 기획자와 번역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소통해야 합니다. 현재 번역 지원 시스템에서는 번역가가 지원하는 작품 안에서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국외에 알려야 할 작품이 알려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스템의 단점입니다. 꼭 필요한 작품은 기획사업으로 번역해 세계 무대에 내보내야지요.”

김성곤 원장은 우리나라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보다 공고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번역원의 역할을 재정비하고, 번역가 양성부터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는 세계의 언어로 번역된 우리 문학을 그 나라의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번역은 타임머신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살아보지 못하는 공간과 시대로 이동케 하고,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세계관과 마주하게 한다. 과거에는 꽤 일방적이었던 이 일이, 이제는 이 땅에서 살아본 적 없는 외국인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읽기 위해 번역을 하던 시절에서 보여주기 위해 번역을 하는 시대. 번역은 참 오래된, 그리고 현실적인 기록이다.

김성곤 |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이자 서울대학교 영문과 명예교수. 우리나라 문화와 문학을 오랜 시간 연구해왔으며, 세계의 문화 이론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등 문학으로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제는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글, 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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