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림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경서통과 죽간>

‘배움’에 대하여

‘죽간’이란 대나무를 길게 잘라 겉면을 깎고, 글씨를 쓴 가느다란 나무 조각을 말한다. 종이가 없거나 혹은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이렇게 나무에 글을 쓰고, 그것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들고 다녔다. 책을 뜻하는 책 ‘冊’ 자가 바로 이 죽간을 묶은 책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문자라고도 한다. 이 죽간의 낱개를 담았던 통이 ‘경서통’이다.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최명림 학예연구사가 마음에 두고 있는 유물이다.

그 옛날의 모의고사 시스템
죽간, 그리고 경서통

“사서삼경四書三經과 같은 경전을 배웠던 선조들은 이 죽간에 그 내용을 옮겨 적고, 그걸 보면서 공부했어요. 경서통에 들어있는 죽간을 마구잡이로 뽑아서 술술 외는 것이 선조들의 공부방식이자 시험방식이었지요. 사서삼경과 같은 경전은 삶의 근본이었으니 그것들을 많이 외운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뿌리를 깊게 만든다는 것과 같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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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삼경 등의 경서가 적힌 죽간
일종의 모의고사였던 셈일까. 과거 시험장에서 주제를 던져주고 그 주제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서삼경이나 경전 등의 바탕이 튼실해야 했을 테고, 어느 때고 건드리면 줄줄 외울 수 있을 만큼 단련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경서통에 죽간을 담아 들고 다니며 언제든 쏙 뽑아 주제에 대해 읊을 수 있도록 만발의 준비를 해 두는 자세. 당시의 선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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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놓여있는 것이 경서통과 죽간이다. 국립민속박물관 3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유물을 처음 본 건 타 박물관에서였는데, 제가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였는지 유난히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다 사극에서 죽간이 등장하는 걸 보고 문득, 아이들하고 죽간 얘기를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우리 박물관에도 죽간을 전시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잘 맞아떨어졌죠.”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한국인의 일생의례를 살펴보는 전시장인 3전시장에서 <한국인의 일생의례 완전정복> 교재를 들고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 교재 안에는 전시장의 유물들을 매치하고, 보충 설명하거나 혹은 퀴즈를 통해 익히는 과정들을 담고 있다. 책에는 죽간과 경서통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입시와 인생,
무엇이 중한가

“사춘기의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괜찮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새로운 공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즐기고 있다는 게 보여요. 게다가 모둠별 활동에도 적극적이고, 자신의 역할도 금방 찾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나 발표도 능숙하게 해내요.”

최명림 학예사에게는 고3 수험생인 자녀가 있다. 그 친구는 최명림 학예사의 교육프로그램 개발의 모델이기도 하다. 운 좋게도 아이가 초등학생 때에는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을, 청소년 시기에는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기준은 늘 ‘내 아이라면 재미있어할까?’였다.

“흔한 말이지만 공부는 억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재미있는 영역을 찾고, 그로 인해 공부가 재미있어졌다면, 그때부터 시작이죠. 그래서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 없어요. 지금 살고 있는 순간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서 미래에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덕분에 딸과는 사이가 무척 좋아요. 서로에게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죠. 제 교육 철학이 딸과 제 사이의 부드러운 관계를 형성했을 거라 믿고 있어요. 그리고 박물관 교육에서도 제 소신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명림 학예사는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우는 그 행복감에 젖어 비로소 공부가 즐거워졌다고 했다. 민속학에 관심이 생겨 석박사를 마친 뒤, 문득 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교육학을 다시 공부했다. 이 모든 과정이 온통 즐거움이었다는 그는, 박물관에서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지금도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교육을 만들고 운영하는 하루하루가 무척 재미있다. 그는 여전히 공부 중인 셈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근원이 활기가 되어 청소년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재미와 지적 감동이 함께하는
국립민속박물관 청소년 교육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청소년 교육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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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너무 바빠요. 아무리 알찬 프로그램을 만들어놓아도 막상 아이들이 바빠서 참여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늘 어떤 식으로 맞춰줄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물론, 입시와 관련된 교육을 하겠다고 하면 참여율이 높아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박물관에서조차 그런 교육을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우리는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민속이라는 콘텐츠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특성을 잘 살려서 감동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교육의 경우 부모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많고, 청소년 교육의 경우 그 개인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대상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어린이 교육은 부모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청소년 교육은 ‘살아있는 교육’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개발하려고 한다.

“청소년은 이미 지적으로 성장해 있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이걸 배워볼 거다’, ‘즐기고 놀다 갈 거다’라고 말하면 잘 인지하고,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요. 수험 생활에 지쳐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저희가 덩달아 밝아질 만큼 쾌활해요. 소통이 잘 되고 서로 공감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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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에는 우리 민속의 무형문화와 관련된 프로그램도 개발할 예정이다. 또 학교를 찾아가는 교육도 진행하려고 한다. 학교 커리큘럼에 최적화된 프로그램과 그에 맞는 교구 꾸러미 등을 개발할 예정이라 고민할 것이 많다. 이론과 체험을 적절하게 구성한 프로그램으로 우리 박물관만의 청소년 교육을 안착시키는 데 힘쓰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정말 많이 바쁘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인생을 조금 더 길게 보았을 때, 박물관에 한두 번이라도 찾아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단순히 입시 위주의 공부보다는 아이들의 지적 성장에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물관 교육이, 이미 관심이 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청소년들에게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국립민속박물관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은 죽간을 만들 거다. 그 가느다란 나무 조각에 얇은 펜으로 글자를 눌러 쓰며 옛날 선조들의 지혜로운 공부방식부터 나무의 생태계까지도 한 자리에서 배우게 될 거다. 그것도 무려 웃고 즐기면서. 그것이 박물관 교육이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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