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노출의 계절’은 존재했다?

1930년대 새로워진 미의 기준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 여름이다. 요즘이야 ‘몸짱’되기에 대한 관심이 남녀노소, 사시사철을 불문하고 지속되기는 하지만, 여름이면 여성들은 조금 더 몸매를 가꾸는 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곤 한다.
 
 

현대인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미용체조법

 
그래서 요즘 신문, 잡지 등을 찾아보면 아마도 아래와 같은 글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여러분도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의 동작을 따라 해보자.
 
하나, 가슴을 앞으로 그냥 내밀며, 양 손을 위로 쭉 뻗었다가, 손끝이 발가락에 닿을 때, 양 손을 아래로 뻗으며, 전신을 굽힌다. 이 운동을 계속하면 가슴의 모양이 곱게 발달되고 미끈한 각선미를 갖게 된다.
 
둘, 마루 같은 데서 무릎을 꿇고, 등허리를 바싹 위로 구부리며 양 손을 아래로 드리웠다가, 다음에 손과 무릎을 땅바닥에 붙이고 허리를 전과 반대 방향으로 굽히며,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앞으로 쑥 내어 민다. 이 운동을 계속하면 횡경막의 군살을 없게 하고 몸의 자세를 곧고 바르게 만들 수 있다.
 
셋, 마룻바닥에 드러누워서 두 다리를 위로 쭉 뻗는다. 양손은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방바닥에 딱 붙인다. 이렇게 하고 두 다리를 제각기 엇바꿔가며 방바닥으로 쭉 뻗는다. 이렇게 몇 번이고 계속하면 허리의 곡선을 곱게 하고 각선미도 돕게 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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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부인과 체육>, 「여성」, 193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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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는 다리에도-다리의 미용술>, 《조선일보》, 1929.4.25.


 
위 동작들은 평소 미용체조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날 몸매를 가꾸기 위해서는 흔히들 하는 기본적인 스트레칭 동작이다. 그런데 요즘 발행되는 <보그>나 <엘르>, 또는 <여성중앙>이나 <우먼센스> 같은 데에 실려 있을 법한 이 미용체조법은 사실 1930년대 조선시대의 잡지 《삼천리》 1935년 10월호 중 「현대인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미용체조법」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일제 강점기’라 알고 있던 1930년대에도 여성들이 아름다운 몸을 가꾸기 위해선 이런 동작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위의 글을 보면 각각의 동작들이 어떤 부위의 쉐이핑shaping에 적합한 지를 적어놓고 있다. 첫 번째 동작은 가슴 모양과 각선미에, 두 번째 동작은 상체의 군살 제거와 몸의 자세에, 세 번째 동작은 허리곡선과 각선미에 좋다고 적혀있다. 이는 다시 말해 아름다운 몸 가꾸기, 즉 ‘미용’이란 가슴부터 허리를 이어 다리까지의 ‘S라인’ 곡선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 시대 여인들의 옷은 위생상 해롭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낚시성’ 기사들의 헤드라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S라인’에 대한 욕망은, 근대 사회에서 시작되었다. 20세기 직전만 해도 한국 여성의 몸은 S라인보다는 소문자 b라인에 가까운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실루엣이 아름다운 것이었다1). 즉, 상체는 거의 평평하고 좁아야 하며, 하체는 치마폭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넓고 풍성한 것이 아름다운 여성의 몸 라인이었다. 이를 위해 가슴부위는 ‘가슴띠’일명 ‘허리띠’로 강하게 압박해 졸라매었고, 치마는 수많은 속치마를 통해 부풀어 오르게 꾸몄다.
 
그런데 20세기 초 근대적 지식인들 눈에는 이런 조선 시대 여성의 옷은 ‘위생’에 해롭게 보였다. 저고리의 길이가 너무 짧은 반면에, 치마 길이는 너무 길고, 치마에서 가슴 부위를 띠로 동여매는 점 등이 여성의 건강에 해로운 까닭이었다. 저고리가 너무 짧으면 여성들이 상체를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 몸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치마 길이가 너무 길면 바닥의 더러운 오물이나 먼지 등을 치마가 다 쓸고 다녀 호흡기 질병 등을 앓게 되고, 가슴에 띠를 두르면 흉부 압박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위생을 위해 저고리의 길이는 길게 바꾸고, 치마는 가슴띠 대신 치마에 어깨끈을 다는 형태를 고안하도록 의복이 개량되기 시작했다.2) 그리하여 1920년대 중반에는 여학생이나 신여성들 대부분이 개량치마를 입게 되었고, 조선 가정의 부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개량치마가 보급되었다.3)
 
“근대부인 더욱이 모던 걸들은 짜른 스카트와 엷은 양말 얕은 칼라, 두 팔을 그리고 아름다운 육체를 내놓을 대로 내놓은 위에 입는 의복까지가 선명한 빛깔, 즉 엷은 색이므로 태양의 자외선을 자유롭게 쉽게 받게 되는 까닭으로 건강해지며, 머리부터 발아래까지 컴컴한 것으로 몸을 갑갑하게 싸고 있는 남자보다는 점점 튼튼해지는 경향이 현저”4)하다는 평가까지 받게 된다.

 
 

몸맵시가 좋아야 옷맵시도 난다
고군분투의 시작

 
그런데 몸의 건강을 위해 바뀐 여성들의 옷은 몸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짧아진 치마 길이는 여성의 몸에 ‘각선미’라는 또 다른 미적 기준을 요구했다. 짧아진 치마 밑으로 보이는 다리의 곡선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 새로운 패션이 만들어 낸 새로운 ‘몸 라인’이었다. 그래서 ‘각선미’라는 말이 유행을 하며 여성 미모의 주요 기준이 되었고,5) 이에 따라 스타킹, 하이힐을 신거나 미용체조를 하는 등의 각선미를 가꾸는 방법들이 신문, 잡지에서 꾸준히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의의 개량은 여성의 몸이 가진 입체성에 대한 자각을 가져왔다. 가슴띠와 같이 가슴 부위를 동여맬 경우 여성의 유방은 곡선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평면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러나 의복의 개량, 양장의 도입으로 드러나게 된 가슴의 굴곡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브래지어에 대해서도 조선에 알려지게 됐는데, 브래지어는 교과서 《양재봉강의》1937에서 양장을 위한 속옷들을 나열하면서, 그리고 1937년 11월 잡지 《여성》에 하영주의 「부인의 의복과 색채의 조화」에서 ‘유카바’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삼천리》 1935년 12월호에는 「신사 일인사백십여원 숙녀 일인오백원 내외, 말쑥한 신사 숙녀 만들기에 얼마나한 돈이 드나?」라는 제목으로 청년남녀들의 양장을 하는 데 드는 의복 및 장신구의 품목과 그 가격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양장 숙녀를 만들려면?”이라는 항목에 맨 첫 줄에 적힌 것이 ‘유방뺀드’, 즉 브래지어였다.

 
우리들의 현재 미인은 그리 살이 찌지도 않고 여위지도 않은 여자로 어깨와 가슴은 탄력이 있어 보이고 유방은 퉁퉁 부은 듯 볼록하게 솟아오르고 허리는 그리 길지 않은데 궁둥이까지 곡선을 곱게 거느리어 통통한 엉덩이가 그리 크지도 또 적지도 않고 다리는 날씬하게 길어야 합니다. – 「몸맵시가 좋아야 옷맵시도 난다-나체미의 표준은 무엇?」, 《조선일보》, 19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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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바 만드는 방법>, 「여성」, 1937년 11월호

 
이러한 과정을 거쳐, 위의 글에서처럼 오늘날과 같은 S라인, 어깨와 가슴은 탄력 있게, 유방은 볼록하게, 허리는 길지 않고, 엉덩이 곡선이 아름다우며, 다리는 날씬하고 긴 것이 ‘미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인이 되기 위한 우리 여성들의 고군분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 홍나영, 「조선시대 복식에 나타난 여성성」,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13, 2006.12
2) 나혜석, 「부인의복 개량문제-김원주 형의 의견에 대하야」, 《동아일보》, 1921.9.28.; 임숙재, 「생활개선:세 가지를 통틀어-이렇게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신여성》, 1925.1.
3) “저고리를 전보다 조금 길게 하고 치마를 전보다 짧게 하되 가슴을 졸라매는 것은 크게 해로운 일인고로 어깨에 걸어 입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퍼져서 지금은 어느 곳 여학생이든지 그렇게 입는 것 같습데다. 그만큼하면 아주 편하고 어여쁜 옷이 된 것입니다.”: 이화교장 미국인 아편설라씨, ‘아, 몇 가지만 고쳤으면! 입는 이들의 생각할 몇 가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복의 장처단처」, 《신여성》1924.11.
4) 「남자보다 튼튼한 미국의 모던걸-짜른 치마와 야즌 칼라덕에」, 《동아일보》 1928.12.25.
5) 「미의 표준은 아래로 각선미와 스타킹」, 《조선일보》, 1936. 4. 10.

 
 

글_이영아 | 명지대학교 조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신소설에 나타난 육체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로 200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문화연구소 선임 연구원,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등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인문교양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육체의 탄생>민음사, 2008, <예쁜 여자 만들기>푸른역사, 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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