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전자오락실’ 등장

아홉 살 때, 오락실에서 ‘버블버블’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뺨이 얼얼했다. 무엇인가 내 안면을 후려친 것이다. 뭐지?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니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는 나를 끌고 집에 가서 한 시간 동안 때렸다. 내가 그렇게까지 맞을 짓을 했어? 라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때는 엉엉 울면서 빌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 하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오락실에 간 거, 다른 하나는 엄마 지갑에서 천 원짜리를 몰래 꺼낸 거. 물론 그 천 원으로 오락을 했다. 1989년이었다. 엄마 돈 훔친 건 잘못한 게 맞는데, 오락실 간 건… 그게 잘못한 건가? ‘당연하지, 우성아, 잘못한 거란다. 시대가 변해서 네가 지금 그딴 생각을 하는 거란다’ 지금 나는 나에게 말하고 있다.
전자오락기계가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 초다. 일부 호텔 등에서 외국제를 수입했다. 서울시는 1971년 1월 25일 처음으로 전자오락실 허가를 내주기 시작, 73년 12월 26일 보건사회부로부터 허가 중지 지시를 받을 때까지 모두 43개 영업소에 허가를 내주었다.

왼쪽은 전라북도 김제시의 공용버스 터미널에 있는 오락실. 최근에는 오락실에 동전노래방, 인형뽑기, 리듬게임 등 오락기의 종류도 다채로워졌다.
오른쪽은 학교 앞 문방구에 쪼그리고 둘러앉아 두드리던 작은 오락기.

 

경향신문 1980년 5월 1일 자에 ‘무허 전자오락실 구제되나… 안되나… 생업 보호와 불요불급 … 엇갈린 명암’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무허가 오락실이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였다. 기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반인이나 학생층에서 전자오락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고,
이 같은 수요 급증 추세에 따라 곳곳에 무허가 전자오락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기현상’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왜 ‘기현상’이지? ‘오락 기계’라는 신문물이 등장했으니, 그걸 하러 가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하지만 당시 주된 인식은 달랐다. 오락실을 ‘몹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여름 청소년, 특히 학생들의 전자오락실 출입이 사회 문제로 등장, 교육적으로 이롭지 못하다는 여론이 일고,
곳곳에서 이로 인한 학생들의 탈선행위가 빚어졌다.
학부모들도 자녀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무허가 전자오락실을 강력히 단속해달라고 당국에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수십 년 전 초창기의 전자오락이란 게 음… 도대체 얼마나 유해했을까? 나는 약간 웃음이 나온다. 요즘 낮에 PC방은 ‘초딩’들이 점령한다. 이 아이들이 곧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탈선하는 것일까? 설마.
나는 그날 엄마한테 몸 여기저기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나 걱정됐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줘서라도 아들이 다시는 오락실에 가지 못하도록 하겠다, 남의 지갑에 손을 못 대게 하겠다, 결심했던 것이다. 그 덕에 내가 잘 자라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고 적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후에도 나는 오락실에 갔다. 열심히 갔다. 갤러그도 하고, 버블버블도 하고, 스트리트 파이터도 했다. 스트리트 파이터는 너무 잘해서, 동네에서 유명했다. 100원만 들고 오락실에 가면 30분은 충분히 놀 수 있었다. 동네 형들도 나랑 붙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때 엄마가 이 사실을 알았으면 나를 또 혼냈으려나. 하지만 엄마 지갑에서 더 이상 돈을 훔치지 않았으니까, 그건 정말 좋은 일이지 않나? 그게 다 내가 게임을 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음… 이런 일로 칭찬을 해주진 않았겠지.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따라서 현재로썬 이들 무허가 업소에 대한 구제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당시 관계부처는 회의를 열고 무허가 전자오락실을 뿌리 뽑는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있었다. 무허가 오락실이 들어서 있는 건물에 단전, 단수하는 방침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는 변한다. 1984년 9월 26일 경향신문에는 ‘무허 전자오락실 양성화’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즈음 무허가 전자오락실이 서울시에만 5천여 개에 이른다. 서울시는 보건사회부와 협의해 전자오락실을 허가한다. 물론 전제는 있다.

 

‘전자오락기구는 모두 보사부로부터 제조업 허가를 받은 업체에서 제작된 것이어야 하고
오락프로그램의 내용도 보사부가 고시한 프로그램만 사용해야 한다.’

 

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엄마한테 뺨을 맞았을 때, 내가 무허가 오락실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뭐, 그땐 그런 건지 저런 건지 몰랐지만. 십오 년쯤 시간이 지나고, 내가 PC방이라는 데를 간다는 걸 알았을 때, 여전히 엄마는 엄청나게 큰일이 생겼다고 믿었다. 나를 때리진 않았지만 붙잡아 앉혀 놓고 길게 연설을 하셨다. 그때 내가 말했다. “엄마, 한 시간에 천원이야.” 그 후로 엄마는 더 이상 내가 PC방에 가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으셨다. 왜지? 엄마, 그건 왜야?
모든 변화가 발전은 아닐 것이다. 게임이 유해한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있다. 유해… 하지? 어떤 게임은 약간 나쁜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 어쩌면 많이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릴 때 오락실에 다녔던 꼬마들이 지금 다 범죄자가 된 건 아니다. 아마… 나를 봐도 그렇고. 심하게 빠져들지 않는 것, 이게 중요하다. 엄청 좋은 것이라고 해도 심하게 즐기면 나쁜 게 되니까.
엄마는 요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고스톱도 치고, 벽돌도 부순다. 엄마는 말한다. “우성아, 게임이 치매를 예방해준다고 하네.” 시대는 분명히 변한다. 그리고 엄마는 늙는다. 나도… 아저씨가 되었고.

글_ 이우성
시인이자 패션매거진 《아레나 옴므+》 피처 에디터. 그는 미적인 것을 동경한다. 또한 그것의 본질을 궁금해 한다. 스스로를 ‘미남’이라고 소개하는데, 인정이나 동경 따위가 아니라 질문이나 호기심에 가깝다.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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