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표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청바지>

청바지, 좋아하세요?

당신은 청바지를 좋아하는가. 아니, 이런 질문도 조금 이상하다. 당신은 청바지를 몇 벌 가지고 있는가. 2014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청바지를 주제로 한 조사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관련 전시도 열렸다. 다들 물었다. ‘청바지가 민속이야?’ 지금부터 청바지가 민속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박물관, 청바지를 탐하다

“청바지 있으시죠? 청바지에 대한 기억도 있으세요?”

조사 당시, 강경표 학예연구사가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보면 다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청바지는 얼마든지 있으나 청바지에 대한 기억이라 할 것이 떠오르지 않은 까닭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청바지’를 조사한다고 하니 더욱 의아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자, 같이 생각해 봅시다. 엄마가 사지 말라고 했던 경험 있으시죠?’라고 다시 물으면 ‘아, 있어요!’ 하면서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흘러나왔죠. 특별함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런 기억 하나하나가 모두 특별한 기억이에요.”

고고유물은 발굴되는 장소가 그 주소가 되고, 측정 가능한 연대가 있어 시대와 정보를 유추할 수 있지만, 생활유물, 즉 호미나 쟁기 등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물건에는 그런 정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량으로 생산되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만큼 버리는 것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깃들어 있는 사연이 있어야만 유물은 생명력을 갖게 되고, 대중에 수용될 수 있다.

청바지를 조사한 연유도 거기에 있다. 사람의 삶을 어떤 물건을 통해 투영해보자는 의견에서 모든 궁리가 시작되었고, 인류의 공통된 생활문화가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청바지라는 답이 나왔다. 정말이지 누구나 갖고 있고, 즐겨 사용하고 있으며 이제는 평범해진 청바지. 이 청바지를 조사하기 위해 강경표 학예연구사는 영국과 독일, 미국 서부와 인도, 그리고 일본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지각색이었죠. 100세 할머니는 청바지를 입으면 한 없는 젊음을 느낀다고 했고, 대학생들은 비가 오거나 데이트가 없는 날 입는다고 했어요. 어떤 단역 배우에게는 오디션을 볼 때 반드시 챙겨 입는 징크스이자 행운의 상징이었고, 어떤 학생은 칠레 사막투어 때 사 입었던 경험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미래를 ‘인류학’으로 결정했다고 했죠. 이렇듯 청바지는 문화권, 국가, 개개인의 역사와 사연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수용하여 이용하고 있는 인류 공동의 의복이라고 할 수 있겠죠?”

 

청바지, 무언가의 상징이다

조사를 진행하면서 각국 참여자에게 청바지를 기증 받아 청바지 전에 전시를 했다. 특별한 기억이 있는 그 청바지들은 전시 이후,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중히 보존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청바지로, 강경표 학예연구사는 인도의 리투 디오라Ritu Deora의 청바지를 꼽았다.

“그녀는 인도 최고의 영화, 텔레비전 의상 디자이너예요. 그 분을 찾아가서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청바지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2002년에 자신이 디자인한 청바지를 보여주었어요. 그 청바지는 영화 <Desh Main Nikla Hoga Chand>에서 영국에 유학중인 여주인공이 입은 옷이에요.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나 멀리에서 공부 중이지만, 결코 모국의 종교를 잊지 않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성실하게 살아가죠. 여주인공의 정체성과도 같은 그 옷을 리투 디오라는 인도 전통 문양의 천을 청바지에 덧대어 표현했어요. 이 옷으로 리투 디오라는 큰 상을 받았고, 그 후로 최고의 의상 디자이너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죠.”

이는 청바지가 하나의 문화 코드이자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인도는 여전히 청바지에 보수적인 인식이 남아있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청바지를 입지 않은 사람도 부지기수인 나라다. 그 영화 속 청바지는 결국 사람들의 인식과 시야가 조금씩 열리고 있음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160330_img_jean

그 청바지로 리투 디오라는 현재 인도 주요 4개 채널의 의상 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며 볼리우드라 불리는 인도 영화에도 의상 디자이너로서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그녀 자신은 청바지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옷이란 자신의 체형에 맞고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신조인데 청바지는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녀는 늘 인도 전통의상인 살바스만 입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기증을 많이 망설였어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옷과도 다름없으니 그녀에게도 소중한 추억이자 자산이니까요. 하지만 이 조사와 전시의 취지가 그녀에게도 통했다고 생각해요. 인도의 당대 대중정서를 드러내는 유물로써 기록될 것이고, 그것은 자국 문화를 알리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임은 분명하니까요.”

 

160330_img_jean_interview

강경표 학예연구사가장 오른쪽가 인도를 직접 찾아가 리투 디오라와 그의 남편에게서 청바지에 대한 사연을 듣고 있다.

 

당신의 그 사소한 기억 하나가 민속이다

그렇다면 강경표 학예연구사에게 청바지는 무엇일까.

“이 조사를 하면서 저에게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내가 그동안 청바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몽땅 잊어버리게 됐거든요.웃음 듣는 이야기마다 모두 공감되어서 그래요. 마치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기분이랄까요. 조사하는 동안은 거의 청바지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계속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계속, 계속, 멈추지 않고. 꼭 청바지 관음증처럼.웃음

조사하는 중에 미국 서부 지역에 위치한 ‘프리미엄 데님’이라 불리는 고급 청바지 제조 회사를 찾았는데, 대부분 회사의 대표가 한인 교포였다. 그들에게서 타국에서 살아온 얘기,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고생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에게 청바지는 삶의 다른 이름이었다. 모국에서 찾아온 낯선 연구원에게 그들은 따뜻한 정을 표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청바지 천이 필요하다면 박물관을 뒤덮을 만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격려도 받았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청바지 조사는 이루어 졌다.

“전시도 성공적이었어요. 청바지라는 소재도 친근하지만, 민속박물관에서 그 청바지를 어떻게 풀어낼는지 궁금하셨을 거예요. 많은 관람객이 찾아주셨고, 무척 즐거워하셨죠. 그게 우리 박물관에서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품어갈 수 있는 전시, 그리고 조사. 사람 사는 것이 민속이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민속이니까요.”

그저 입고 벗기 편해서 즐겨 입을 뿐인데, 청춘의 상징이자 자유의 상징이고 문화의 상징으로서 빛을 내는 청바지. 대수롭지 않았던 그 옷에도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에게도, 내 곁의 친구에게도, 세계 어디서든 살아가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도 청바지에 얽힌 이야기 하나쯤 없을 리 없다. 바짓단이 너무 길어 엄마에게 혼이 났든, 찢어진 청바지를 세탁소에서 엉망으로 꿰매 놓았든. 당신의 그 사소한 기억이 바로 민속이다.

 

160330_slid_jean_02
160330_slid_jean_03
160330_slid_jean_04
160330_slid_jean_05
160330_slid_jean_01

 

| 세계의 물질문화 조사 보고서 〈청바지〉 – PDF
| 청바지 특별전 전시도록 〈mega jeans〉 – PDF
인터뷰_ 강경표 학예연구사
글_ 편집팀

3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나라마다의 문화에 따라 청바지를 다르게 대한다는 말이 참 와 닿네요. 청바지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물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일것 같다는 점을 새삼 느낍니다.^^

  2. 청바지를 단순 의류가 아닌 기억으로 그리고 그러한 기억을 민속으로 풀어낸 강경표 학예연구사의 시각이 새롭습니다.
    전시를 보지 못한게 안타깝네요.
    앞으로도 새로운 시각의 새로운 해석 부탁드립니다.

  3. 얼마뒤면 일흔이되는 아버지께선 요샌 청바지만 입고 다니십니다…젊게 사시려는건지..아니면 젊었을적이 그리운건지…. 오늘은 아버지랑 쏘주한잔 하면서 청바지 입던 젊은 시절애기나 들어보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03045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대표전화 02-3704-3114    팩스 02-3704-3113

발행인 김종민    담당부서 섭외교육과  © 국립민속박물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