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달밤>

이태준은 철원에서 출생해서 부모를 잃고 평안도를 전전하다 1920년 경성으로 온다.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하는데 등록금을 자주 내지 못했고, 1924년 동맹휴교 사건의 주모자로 인정되어 퇴학당한다.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을 시작하고 1925년 <조선문단>으로 문단에 나온다. 1926년 도쿄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 신문배달 등을 하며 학비를 번다. 1927년 경성으로 돌아와 1929년 <개벽사>에 입사하고 그 후로는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며 생활의 안정을 찾아간다. 1933년 성북동 집을 장만해서 월북할 때까지 거주한다. 그가 29세 때였다.
 
<달밤>은 바로 이 해, 이태준이 193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성북동으로 이사한 남자와 신문배달부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직업이라든가 나이 같은 주인 남자에 대한 신상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데, 신문배달부가 ‘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주인 남자를 작가 자신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는 신문사에서 월급을 받고 신문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는 ‘잘 나가는’ 작가이지만 과거에는 신문배달 등을 하면서 고학을 하던 ‘고아 이태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달밤>의 신문배달부와 이태준을 겹쳐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이태준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작가가 아니고, 이 소설의 신문배달부는 상당히 ‘모자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뎁쇼, 왜 이렇게 쬐꼬만 집을 사구 와 곕쇼? 아, 내가 알았더면 이 아래 큰 개와집도 많은 걸입쇼…….”
한다. 하 말이 황당스러워 유심히 그의 생김을 내다보니,
눈에 얼른 두드러지는 것이 빡빡 깎은 머리로되 보통 크다는 정도 이상으로 골이 크다.
그런데다 옆으로 보니 짱구 대가리다.
“그렇소? 아무튼 집 찾느라 수고했소.”
하니 그는 큰 눈과 큰 입이 일시에 히죽거리며,
“뭘 입쇼, 이게 제 업인뎁쇼.”


 

원래 배달 시간보다 서너 시간 늦게 와 이러저러 핑계를 대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왜 이렇게 작은 집에 사느냐며 주인 남자를 타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묻지 않는 말에 자신을 소개한다. ‘황수건’이 자기 이름이라고. 그리고 자신을 위해 신문을 보는 집에서는 개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다른 날에는 또 묻지 않는 말에 자신의 별명에 대해 알려준다. 아이들이 노랑 수건이라고 놀려서 이 동네에서 ‘노랑 수건’이라고 하면 다 자긴 줄 알더라고 자랑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황수건을 ‘진짜’ 신문배달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등에 신문사 상호를 박은 겉옷인 합비를 입고 다니지도 않고, 방울을 차고 다니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식 신문배달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황수건은, 그저 ‘보조배달’이다. 그래서 월급도 ‘원배달’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루는 나는 ‘평생 소원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그까짓 것쯤 얼른 대답하기는 누워서 떡먹기’라고 하면서 평생 소원은 자기도 원배달이 한번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남이 혼자 배달하기 힘들어서 한 20부 떼어주는 것을 배달하고 월급이라고 원배달에게서 한 3원 받는 터라,
월급을 20여 원을 받고 신문사 옷을 입고 방울을 차고 다니는 원배달이 제일 부럽노라 하였다.
그리고 방울만 차면 자기도 뛰어다니며 빨리 돌 뿐 아니라
그 은행소에 다니는 집 개도 조금도 무서울 것이 없겠노라 하였다.


 

세상에나. 원배달이 된다면 개도 무섭지 않을 것 같다고 황수건은 말한다. 귀엽고도 딱한 남자다. 주인 남자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신문사 사장이 되길 바라지 원배달을 바라느냐고 묻는다. 황수건은 속 썩는 게 싫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황수건이 신이 나서 배달을 온다. ‘드디어’ 원배달이 되었다는 것. 주인남자는 좋아하는 친구가 큰 출세라도 한 것처럼 마음으로 기뻐한다. 그리고 어서 내일 저녁이 되어 황수건이 ‘방울’을 흔들면서 ‘합비’를 입고 나타나주길 기대한다.
 
이런 소설의 문제는 어김없이 우리가 예상했던 결말을 맺는다는 것이다. 착하지만 모자란 인물의 고난은 예정되어 있으며, 이것을 읽는 우리는 착잡한 기분이 되어 이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황수건은 다음날 오지 못한다. 원배달이 되지 못했던 것. 보조배달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출세였던 것. 주인남자에게 처음 보는 자가 자기가 새로운 배달부라고 소개한다. 황수건은 늘 서너 시간씩 늦게 왔었는데 해도 지기 전에 배달을 와서 말이다. 주인남자는 황수건의 안부를 묻는다. 새로운 배달부는 황수건이 보조배달마저 떨어졌다고 말한다. “그까짓 반편을 어딜 맡깁니까?”라며.
 
나는 이 소설을 읽다가 일제시대 신문배달부의 복장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합비를 입고, 방울을 찬다는 것을. 그것은 감히 보조배달은 누릴 수 없는 원배달만의 ‘특권’이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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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발행된 국한문판 일간신문 <매일신보>. 1935년 6월 20일 조간 발행본 중 1,2,5,6면.
1면은 역사소설, 해외문예, 신간, 광고가 2면은 독일의 항공모함, 각종 등기공보에 관한 내용이 인쇄되어 있고, 5면에는 마약중독 구제책, 단상의 비극, 당선사례 등이, 6면에는 매일신보 1만 부 발행 축하문구와 명월관의 사진과 주소, 전화번호가 실렸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태준
1904년 철원 출생. 휘문고보에 다니다 동맹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에 건너가 고학하던 중 단편소설 〈오몽녀〉를 시대일보에 투고하며 등단. ‘개벽’과 ‘조선중앙일보’ 기자로 일했고, 박태원, 이상, 정지용 등과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1946년 월북했고, 1956년 숙청당했으며, 이후의 행적에 대한 기술은 불명확하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글_ 한은형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장편소설 《거짓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가 있다.

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황수건은 은근한 순정도 있는 약간 모자란 사람입니다. 황수건의 모습은 소수적 약자로써의 어려움과 힘겨운 삶을 대신 보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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