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관리자

조사보고서 <교동도 시계수리공과 이발사>

1960년대 큰아버지 박일구씨는 한국 최초의 시계시장인 남대문시장에서 ‘리코박’으로 불리는 거물이었다. 마땅한 유통경로가 없던 시절 서울에서 고급시계를 구하려면 그를 통해야만 했다. 우리 집안과 시계의 인연은 각별하다면 각별했다.

나는 1970년대 외삼촌 원서동의 ‘공간’ 사옥 김수근 건축가의 서재에서 처음 시계콜렉션을 만났다. 지인들과 디자인 시계를 나누며 즐기는 모습은 그때부터 익숙했다. 당시 부친 화실이 있던 원남동 로터리와 종로4가의 시계골목은 아주 가까워서 틈만 나면 시계를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국민학생, 중학생 어린 나이에 시계를 살 돈은 없었지만 진귀하고 다양한 시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 무렵 광산업의 대부였던 할아버지의 회중시계를 뜯어보고 나는 평생 시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외관의 디자인도 매력적이었지만 그 안의 메커니즘이 하나의 우주처럼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모든 시계는 다른 속내를 가지고 있다. 시간을 가리킨다는 공통점 너머에 그것을 구현해 내는 방식이 모두 독창적이고 다르기 때문이다. 무브먼트라고 하는 시계의 메커니즘을 하나의 언어로 본다면 세상에는 시계 회사만큼 많은 시계 제작의 독창적인 언어가 있는 셈이다.

 

시계, 스스로 시대를 살아가다

 

1900년대 초 시계는 귀금속의 하나로 모두가 수공이었다. 그만큼 구하기 힘들었고 시계의 장인들 역시 예술가 혹은 장인의 자세로 진지하게 시계를 만들었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철도와 전쟁은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하는 이유를 확대했고, 시계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발전하였다. 탁상시계와 벽걸이시계가 회중시계와 손목시계로 변한 시기도 이때쯤이다. 시계의 용도가 변하면서 양적인 성장도 뒤따랐다. 이제 장인의 손을 떠나 공장라인에서 시계는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주로 관심을 갖고 모으는 시계가 바로 이 시대의 것들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귀중품에서 실용품으로 넘어오는 즈음의 시계들의 독특한 매력에 나는 저항할 수 없다.

내가 모으는 시계는 주로 손목시계이다. 값비싼 시계도 있지만 독특한 디자인에 끌려 어쩔 수 없이 주머니를 털어 구입하기도 한다. 때로는 원주인의 팔목에서 굉장한 인생을 함께한 소중한 시계를 선물 받기도 했다.

최초의 손목 알람 시계, 그 시대의 기술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엽렵하고 얇은 시계, 모든 것이 다 큼직큼직한 전투비행사의 군번 적힌 손목시계, 현재 유행하는 크로노그래프의 원형이 된 올림픽 육상코치용 시계, 약혼을 상징하여 서로의 사진을 넣을 수 있는 예물시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계에는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2,000개가 넘는 시계를 하나씩 손 보다 보면 그 시대를 즐길 수 있어 좋다. 시계가 주는 상상의 세계는 참 복잡하고도 신선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념일에 시계를 하나 장만하라고 하곤 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시계를 사라고 권하는 식이다. 그렇게 자신의 탄생을 축하하고, 너무 어려서 알 수 없었던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을 찾아보는 기회를 가지라는 의미다. 한창때였을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의 추억을 함께 한다는 하나의 상징물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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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부여하는 가치와 품격

 

나는 라디오의 시보에 맞춰 1초 늦게 시계의 시간을 맞추는 일이 익숙한 세대이다. 자동시계 훨씬 이전에 태엽 시계의 용두를 돌려 시계 밥을 주는 일이 번거롭지 않은 세대이기도 하다. 요즘은 휴대폰의 영향으로 시계를 차는 사람이 줄었지만, 패션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시계를 필수 아이템으로 생각한다. 꼭 시간을 본다는 기능적인 측면만 중요하지 않은 게 시계의 매력이다.

외국 비행기의 승무원들은 탑승객의 신발과 시계를 제일 먼저 살펴본다. 그가 착용한 것이 단정한 앤티크 시계라면 당장 그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진정한 가치가 있는 앤티크 시계를 소유하려 한다는 것은 일종의 유행이자 공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파티문화가 제법 자리잡게 되었는데, 어머니들이 차던 작지만 고급스런 뱅글 타입의 장식성 강한 시계는 파티 코디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계는 패션의 일부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패션니스타가 되고 싶다면 앤티크 시계 하나쯤 장만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굳이 왜 앤티크 시계인가를 묻는다면 요즘 나오는 모든 시계들의 원형이자 완성형이 이미 그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항상 새롭고 값비싼 시계들이 생산되고 소비되지만 앤티크가 갖는 원형
오리지널의 힘 앞에는 매우 무기력해 진다. 가끔씩 시계전시회에 소장품을 출품하는 경우가 있는데 뛰어난 앤티크 시계가 그 넓은 전시장 한 가운데 있는 것 만으로도 최신형 화려한 시계들의 빛이 바래는 경험을 한다. 이는 나만의 감상은 아니다. 그래서 앤티크 시계는 어떻게 배치를 하더라도 주인공이 되곤 했다. 물론 최근 시계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나의 소명

 

지금도 여전히 나는 시계 콜렉터이다. 인터넷으로 전세계와 소통하며 시계를 모으고 때 빼고 광내는 일은 물론 시간을 정확하게 알리는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수리도 직접 한다. 원래 3,650개를 모으려는 집착에 가까운 목표에 나는 요즘은 관대해졌다. 그것보다는 내가 모은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노력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시계는 정확한 시간의 관리자일 때만 의미가 있으니까. 시계의 생명을 최대한 연장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대별로 명인이라 부를 수 있는 장인들이 만든 100년 전의 무브먼트는 아직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내가 느끼는 시계에 대한 소명은 이들의 작품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작동하는 시계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계를 직접 수리한다. 모으는 것보다 보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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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조사보고서 <교동도의 시계수리공과 이발사>를 살펴보고, 필자가 사랑하는 시계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조사보고서 <교동도의 시계수리공과 이발사>는 2012년 발간된 조사보고서로, ‘근현대인물생애사’ 조사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조사보고서의 시계수리공인 교동도의 황세환은 1939년생으로 광복 이후 반세기 동안 시계 수리업과 도장업을 이어 왔다. 그의 삶을 살펴보며 그가 시계수리업을 선택한 이유와 시계수리업의 기술적 특징 등을 아래의 PDF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조사보고서 <교동도의 시계수리공과 이발사> – PDF
글_ 박기태 | 서울예술대학 교수, 빈티지 시계 콜렉터
서울예고, 홍익대학교 졸업. 뉴욕 pratt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환경디자인 집단 ‘Etan’에서 수년간 근무. 귀국하여 ‘공간사’ 부사장을 지내고, 1986년 환경디자인 집단 ‘KDA Group’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2015년까지 ‘김수근문화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대표 건축환경디자인 작품으로 서울 부산 지하철, 88올림픽, POSCO, 인천국제공항, 파주출판도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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