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색, 자연스러운 일상

*이 글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브랜드 명이 언급됩니다. 홍보의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첫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에게 천연염색으로 만든 옷의 첫인상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국 패션 제작산업의 이야기를 담는 <디어매거진> ‘다잉 메시지Dyeing Message’ 편을 준비하면서 전통염색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갈옷, 전통염색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뜨리다

 

새로운 책의 주제를 ‘염색’이란 방대한 범위로 정해놓고 나니, 한국의 전통염색, 그중에서도 제주도의 갈옷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갈옷 브랜드인 ‘몽생이’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넓디넓은 잔디밭에 펼쳐놓은 갈옷, 큰 고무통에 천을 담그고 발로 밟는 여인들, 바람에 흩날리는 주황색 천 사진이 있었다. 평소 머릿속에 있던 갈옷의 이미지보다는 세련됐고, 이번 호의 첫 장을 여는 소재로 이만한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7월의 어느 날, 사진가 친구와 제주 한경면으로 향했다.
 

갈옷이라 하면 ‘황토색’만 있는 줄 알았던 나는 다양한 빛깔의 갈옷에 놀랐다. 단지 갈옷으로 낼 수 있는 색이 여러 가지라서가 아니었다. 그 빛깔과 음영이 오묘하고도 아름다워서 고작 ‘지역 특산품’ 정도로만 여긴 것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빛깔에 한 번 놀라고, 현대적인 패턴과 정교한 봉제에 두 번, 세 번 놀랐다. 예를 들어 커프스소매가 긴 셔츠는 요즘 유행하는 프랑스 브랜드 베트멍Vetements의 축 늘어진 실루엣을 닮았고, 몸에 달라붙지 않는 와이드 팬츠통이 넓은 바지는 유명 디자이너 JW 앤더슨의 룩북에도 어울릴 법했다. 양팔에 둥그런 싸개 단추가 여러 개 달린 옷은 런웨이에 자주 등장하는 ‘빅토리아풍’ 스타일을, 하늘하늘하게 펼쳐지는 심플한 티셔츠는 일본의 ‘젠zen‘ 스타일을 연상시켰다. 지역 특산품이 가지고 있는 촌스럽고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이미지를 몽생이가 보기 좋게 부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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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지 에디터는 ‘갈옷’ 조사를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갈옷은 충분히 현대적인 소화가 가능한 옷이었다.

 
 

갈옷, 입는 것도 만드는 것도
모두에게 평범했던 일

 

양순자 대표는 뉴욕에서의 디자이너 생활을 접고 고향 제주도에 정착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는 “기존 원단만으로 디자인하면 식상함이 느껴져서 화학 염색을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양 대표는 ‘타이다이Tie dye, 홀치기 염색‘ 등 남들과는 조금 다른 염색을 시도했으나 자연스러운 색상을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떠올린 것이 고향 제주도의 ‘갈옷 염색’이었다.
 

그런 그녀가 갈옷을 제작함에 있어 가장 강조한 것은 일상생활과의 연관성이었다. 육지 사람들에게 갈옷은 특별한 날에 입는 옷, 혹은 집에서 편하게 입는 실내복 정도의 개념이지만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언제 어디에서나 입는 일상복이었다. 특히 제주 사람들은 농업, 어업, 목축업 등 노동을 할 때도 꼭 갈옷을 입었다. 풋감의 탄닌Tannin 성분은 섬유와 결합하면 응고되어 옷을 빳빳하게 만드는데, 그래서 습한 기후에도 몸에 달라붙지 않아 탁월했다. 게다가 자외선 차단, 방충, 항균 효과는 물론 땀이 나도 썩지 않는 ‘천연 방부제’ 역할까지 해 화학 세제가 아닌 물로만 세탁해도 무리가 없다. 갈옷은 아주 기능적이면서도 편리한 의복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쓰고 있는 머리 두건부터 티셔츠, 바지, 양말까지 모두 감으로 염색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주 사람들은 갈옷을 어디서 사 입었을까? 신기한 건 감물로 옷을 염색하는 행위 또한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양 대표의 말에 의하면 제주도 전통가옥 뒤뜰에는 제주 토종 감나무가 한두 그루씩 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열리는 감을 따 투박하게 으깨 감물을 만들고, 옷을 담그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말려 갈옷을 만들었다. 갈옷의 기능을 좀 더 강화하려면 몇 번이고 감물에 담그고 말리기를 반복하면 된다. 하지만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도 사람들에게 일상적이었던 이 갈옷은, 의복의 현대화와 기성복의 대중화 앞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또한 ‘일할 때 입는 옷’이라는 인식이 갈옷을 점차 일상복이라는 범위 밖으로 밀어냈다.
 
 

자연과 가장 닮은 것이
가장 일상적인 것

 

인터뷰를 마치고 민소매 갈옷 2장과 양말을 사 들고 서울로 돌아왔다. 갈옷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으니, 일상복으로서의 갈옷을 경험하고 싶었다. 지난여름 내내 입고, 신고 다녔다. 잘 빠진 카키색의 민소매는 어느 옷에나 잘 어울렸고, 몸에 달라붙지 않아 뜨거운 여름을 나기 제격이었다. 사시사철 신을 수 있는 양말의 기능은 정말 탁월했다. 운동화를 신고 온종일 걸어 다녀도 발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발이 뽀송뽀송해진 느낌이었다. 감물을 들인 양말을 세탁하느라 못 신는 날에는 내심 아쉬웠으며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설 때는 발걸음이 가벼울 정도였다.
 
옷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양순자 대표는, “옷이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하고, 누구나 입기 쉬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었을 때 편안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오래된 모든 것이 좋은 건 아니다. 특이한 방법을 사용한다 해서, 친환경적이라고 해서 어느 날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갈옷은 일상복이 되기 위한 삼박자 ‘디자인’, ‘대중성’, 편안함’을 고루 갖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갈옷의 첫인상이 가까운 시일 내에 바뀌기를 바라본다.

 

글_ 남현지 | 디어매거진,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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