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동양철학자 신정근

아버지의 고향은 충남 홍성이지만 현재는 서울 성북구에 살고 계신다. 나의 고향 또한 서울 성북구다. 몇 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더 이상 명절에 고향 찾을 일이 없게 되었다. 서울 신림동에 살고 있는 나는 추석을 맞아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간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신림동에서 서울 성북구까지의 이동이다. 나의 이동, ‘민족대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귀향의 의미와 현재의 모습, 그리고 미래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동양철학과 신정근 교수에게 들어보았다.

 

어머니, 저 잘 살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귀향歸鄕이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뜻한다. 최근 도시에 살던 사람이 시골에 새로이 터를 잡고 이사하는 ‘귀농’, ‘귀촌’과는 다른 뜻이다. 이 귀향 현상은 언제부터 일어나게 된 걸까.

 

“귀향 현상이 생긴 것은 자기가 나고 자란 곳과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 일입니다.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일치한다면 일어날 까닭이 없지요. 농경사회인 조선 시대에는 관직이나 상업에 종사할 경우를 제외하고 귀향, 귀성이 일어날 원인이나 사건이 훨씬 적었습니다. 이것이 산업화, 도시화와 맞물리면서 전면적이고 대규모적인 이동 양상을 보입니다. 전근대적 현상 중 하나로 ‘민족대이동’이 생겨난 거죠.”

 

이른바 민족대이동은 주로 설날, 그리고 추석 때 벌어진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던 자손들이 명절만큼은 부모님 계신 고향에서 함께 보내고자 하는 의지로 일어나는 일이다. 평소에 가도 될 것을, 굳이 나라가 들썩이는 혼잡한 이 날에 고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보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손쉽게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명절을 통해 헤어져 있던 시간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공유했어요. 또 하나는 ‘감사’의 의미입니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는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지요. 내 삶을 구성하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 선조들로부터 건네 받은 것이고, 또 덕분에 이렇게 풍요로운 추수를 맞이하게 되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냅니다. 마지막으로 ‘시원始原과의 만남’입니다. 나의 존재가 시작된 뿌리를 만나고, 자손들에게 그 뿌리를 알려주기 위해 함께 고향을 찾는 겁니다.”

 

안부安否를 전한다는 말이 있다. 편하게 지내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을 전한다는 말이다. 이렇다 할 연락체계가 없었던 과거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묻는 말과도 상통했다. 신 교수는 편지를 받으면 살아있다는 신호와 같다고 했다. 그 내용이 얼마 적혀있지 않아도, 그것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는 손이 떨릴 만큼 반갑고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 자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에게는 얼마나 큰 선물이었을까.

 

“연락할 길도, 만날 길도 없던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은 사실 지금의 사람들은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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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에서 볼 수 없던 명절의 민족대이동 현상은 산업화, 도시화와 함께 등장했다.

 

“고향 앞으로!” 이제는 다 옛날 얘기

통신의 발달은 민족대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애절함이나 절박함은 덜해지고, 사소한 연락과 간편한 사진 전송 등으로 마치 곁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것마냥 마음이 가까워졌다. 굳이 명절이라고 다른 날과 다르지 않다. 함께 얼굴 맞대고 의례를 준비하기 위한, 의례적인 날이 되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고향에 갈 때 이것저것 많이 준비 했습니다. 공산품이나 전자제품 등 그야말로 신문물을 마련했죠. 도시에는 들어왔는데, 아직 시골에서는 접할 수 없는 물건들이 당시에는 참 많았습니다. 솥 걸어 밥 짓던 시골 사람에게 전기 밥솥이 얼마나 놀라운 물건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도시와 농촌의 삶이 평균화 되면서 진귀한 물건이라는 것이 많이 줄었고, 택배 등 전달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생겨났으니 굳이 직접 들고 갈 필요가 없어졌지요.”

 

귀향길 또한 그 모습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무작정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을 찾아 차표를 구하기 위해 몸싸움하기 일쑤였고, 무임승차도 불사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이후, ‘마이카’ 열풍과 함께 고속도로 옮겨가면서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나절을 꼬박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 사람들은 책상 앞에 앉아 양반처럼 온라인 예매를 하고, 성공만 한다면 부산까지 4시간이면 주파한다. 비행기 삯도 많이 저렴해져 하늘길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반대로 부모님이 자식들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역귀성’도 흔해졌다. 그러나 이동 수단의 변화에 앞서 사람들의 이동량 자체가 많이 줄었다. 그 이유가 있다.

 

“농어촌 인구는 이제 초고령화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거주 지역의 80% 이상이 도시화 되었고,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라고 물으면 ‘도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90% 이상인 상태입니다. 태어난 곳이 도시이니 명절에 찾아가는 곳 또한 도시이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도 도시이니 ‘대이동’이 일어날 수가 없지요. ‘명절 귀향은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 아니라 없어지는 것은 예견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인구구성, 도시화, 고령화 등의 모든 수치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산업화 시절,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고, 가정을 꾸린 세대가 이제 다음 세대를 사회에 진출시키는 시기에 이르렀다. 그들 역시 도시에서 각자의 길을 찾고, 가정을 이룬다. 이들 사이에 ‘대이동’이라 부를만한 물리적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귀향 전쟁도 이제는 끝자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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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면 사람들은 여전히 귀향길에 오른다. 과연 그들이 찾는 ‘고향’은 어디일까. 사진은 명절 서울역의 풍경.

 

내 마음 편한 곳이 고향이오

이제는 귀향이라는 말이 그 의미를 달리하는 시대가 되었다. 반드시 내가 태어난 곳, 부모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것만이 귀향은 아니라는 말이다.

 

“명절이 되면 후손된 도리로 고향을 찾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금 쉬어갈 수 있는 휴일로서의 의미가 더욱 커졌습니다. 합법적인 휴일에 평소에 못 했던 것을 누려볼 기회로 삼는 것이지요. 이미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적 이동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욱 다양화 될 것이라 생각해요. 귀향이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최근에는 명절 연휴를 이용해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도 많다. 우리 명절과 관계없는 다른 나라로 떠나서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다 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아직 공식적인 통계를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고속도로 통행량과 출입국 인구를 비교해보면 그 수치가 비슷할 것이라 추측했다.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나의 일터나 비즈니스와 전혀 관계 없는 어떤 곳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부모님의 태생과 무관하게 나에게 위안과 휴식을 준다면, 그곳으로 가는 겁니다. 그곳이 바로 마음의 고향이니까요. 과거 귀향의 중심에 유대관계가 있었다면 이제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지요. 고향의 숫자가 하나에서 여럿으로 많아졌지만 안정감을 주는 의미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결국 귀향은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다. 과거 가족간의 그리움, 정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떠났다면, 이제는 휴식, 위안을 얻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일까.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왜 이리도 현재의 위치를 벗어나려고 하는 걸까.

 

“시간은 주기적입니다. 한 주기사이클가 끝나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에너지나 의무 등이 처음 시작할 때의 넘치는 기운이 직선적으로 쭉 가는 것이 아니라 곧 소진됩니다. 그럼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거죠. ‘12월의 나’와 ‘1월의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데, 12월에는 반성을 하고, 1월에는 새출발을 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간이 되어 간다고 생각하죠. 공간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자신의 위치가 100% 만족스럽지 않으니, 자신에게 편안함을 주거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곳을 찾아가서 기를 받거나 치유를 얻습니다. 그렇게 활력을 얻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받습니다. ‘주기성’이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재활력을 받아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요한 조건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놀라거나, 서럽거나, 슬플 때 ‘엄마’를 찾는다. 내 등을 쓸어주며 맛있는 음식으로 속을 채워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로 마음을 보듬어주는 사람. 그래서 명절이면 엄마를 만나고 품에 안기며 위안을 얻었다. 지금은 그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움직인다.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의 쉼을 갖는 것, 명절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삶에 맞는, 각자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을 뿐. 그렇게 또 다시 활력을 얻고, 다음 삶을 향해 딛고 나아간다.

 

신정근 |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을 맡으며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011,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맹자와 장자, 희망을 세우고 변신을 꿈꾸다>2014,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뜨다>2014, <공자의 숲, 논어의 그늘>2015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다수의 책이 있다.

 

글·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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