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당대 동아시아 베스트셀러가 되다

특별전 <징비록>

ee

아아, 임진년의 불행은 참담했다. 수십일 사이에 한양, 개성, 평양의 세 도읍을 상실하였고, 팔도가 와해되었으며, 임금이 피난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오늘날까지 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운 것이다. 또한 역대 임금의 어질고 두터운 덕택이 백성들에게 굳게 맺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았고, 우리 임금께서 명나라를 섬기는 정성이 황제를 감동시켜 천자국이 제후국을 돕는 군대를 여러 차례 보냈으니, 이러한 일들이 없었더라면 나라는 위태하였을 것이다.

『시경』에 “나는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이 『징비록』을 지은 이유이다.
-징비록 서문 중에서

IMG_9999_1

 

지금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는 ‘징비록’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서애 류성룡이 가진 ‘충’에 대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서애 류성룡 선생과 관련된 국보급 유물 30여점이 공개된다. 이 전시가 더욱 특별한 것은 그의 친필로 쓰여진 징비록 초본이 공개된다는 점이다. 한때 동아시아의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며 국가에서 금지도서로 지정하기도 한 징비록. 징비록에 깃든 세월을 만나본다.

 

 

서애 류성룡, 후회와 반성을 적다

조선 시대 문신이자 관료이고,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서 국난을 극복한 충신, 류성룡. 또한 그는 이순신이라는 인재를 알아보고 끊임없이 그를 후원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그가 남긴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반성과 회고로 뒷날의 경계를 위해 자신의 충성을 담고 있다. 이번 징비록 특별전은 기획한 최순권 학예연구관은 징비록을 써 내려갔을 그의 마음을 이렇게 추측했다.

 

“류성룡 선생은 7년간 영의정으로 지내면서 국난을 잘 극복했는데 파직으로 아무런 관직도 없이 고향인 안동 하회로 내려가게 됩니다. 절치부심切齒腐心의 마음이었겠지요. 선생은 안동 ‘옥연정사’에서 조용히 세월을 지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때 임진왜란 당시에 갖고 있던 많은 자료들을 수합하고 정리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보태 이 징비록을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징비록은 굉장히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히 언제, 어떤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대한 류성룡 자신의 구체적인 의견도 적극적으로 적고 있다. 또 그가 이면지를 활용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는 후대에서 그가 남긴 기록과 더불어 당시에 있던 또 다른 정보까지 얻을 수 있던 중요한 사료로 작용했다. 그가 이렇게 치밀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고급 정보와 문서를 다루었던 영의정이라는 위치와 함께 류성룡이라는 인물이 가진 수집력과 기록정신에 기인한다.

 

“선생은 승패의 요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등을 자세히 적어놓았습니다. 또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평도 솔직하게 적었고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당시의 인물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기술하기도 했습니다. 징비록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적혀있는 내용만으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단연 이순신이다. 알려진 것처럼 류성룡은 이순신을 등용하고,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적극 추천한 사람이다. 류성룡의 안목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고, 결국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수군으로 활약하도록 하여 수군의 승리를 이끈 장본인이 바로 서애 류성룡 선생입니다. 또 이순신으로 인해 탄핵을 받기도 했고,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전사하면서 류성룡도 동시에 영의정에서 파직을 당합니다. 참 각별한 인연이지요.”

 

성호 이익 선생의 <성호전집星湖全集>에서 성호 선생은 ‘임진왜란의 일등 공신은 이순신이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류성룡’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늘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성호 선생에게도 이순신이라는 인재를 알아본 류성룡의 눈썰미가 통했던 것이다.

150828_jingbi_img

특별전 <징비록>의 기획을 맡은 최순권 학예연구관과 이경민 연구원

 

류성룡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글, 징비록

이번 ‘징비록’ 특별전에서는 징비록의 초본이 공개되어 그 의미를 더한다. 류성룡의 친필로 쓰여진 징비록 초본은 현재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것은 징비록을 목판에 새겨 인쇄한 것으로, 초본에 근거하나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류성룡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초본은 류성룡의 친필이자 유일본입니다. 이 초본에는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류성룡이 느끼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적어놓았으나 후대에 목판화 하는 작업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은 조금씩 배제되었지요. 그래서 초본과 목판본을 함께 연구하면 당대의 임진왜란과 사회적 상황을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과연 류성룡의 냉철한 분석과 반성을 담은 징비록이 당시의 정치에 얼마나 반영이 되었을까. 최순권 학예연구관은 ‘징비록을 썼던 당시보다 후대에 이를 목판화하면서 보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만일 징비록을 쓴 당시에 사람들에게 회자 되었다면 임진왜란 이후에 일어난 병자호란이 지금과 다른 양상을 띠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징비록이 어느 순간 동아시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다. 일본으로 유출되면서부터다. 조선 왕조는 급히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여 유통을 막았다.

 

“왕과 직접 주고 받은 문서는 물론 각종 고급 정보, 군사 기밀 전략까지 정리되어 있으니 다른 나라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요. 실제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담을 수 있는 정보들이 많습니다. 곁에서 해주는 얘기만 듣고서는 그만큼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징비록이 현재 단 한 권으로 세상에 남아있지만, 그것을 쓰기 위해 류성룡이 실제로 필사하고, 수집해놓은 문서들에 자신이 체험한 것들을 서술함으로써 더욱 근거있는 사료로 신빙성을 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남긴 충의 가치를 만나다

전시장은 어둡고 고요하다. 그 어둠 속에서 류성룡의 유품들이 하나 하나 빛을 내고 있다. 전시디자이너 이경민 연구원은 ‘옥연정사’를 답사하면서 느꼈던 그곳의 정취, 그리고 류성룡이 가졌을 감정을 이곳에 옮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옥연정사를 찾았을 때, 이곳에서 류성룡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했어요. 저로서는 류성룡이라는 인물에 대한 경외감, 위압감을 느꼈고, 그 마음을 고스란히 전시장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시장 안쪽에서는 3D맵핑 기법을 활용한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는데요, 임진왜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상입니다. 단 몇 분 동안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간접체험하고 나면 류성룡의 징비록 초본을 만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안내 받게 됩니다. 그 공간에서 징비록을 썼던 류성룡의 마음, 징비록의 의의를 되새겨보았으면 합니다.”

 

그 공간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아 썼을 류성룡의 글씨를 마주하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큰 난리를 겪고, 소중한 동료를 잃고, 병이 든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내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한자씩 적어 내려갔을 류성룡. 부족했던 자신의 그릇과 관료들의 자세, 크고 작은 후회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결국 내일의 안녕을 기원했던 그의 일기이기도 하다.

 

“징비록은 교훈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뒷날을 위해 항상 자신을 반성하고 경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교훈이지요. 또 다시는 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고요. 지금의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가치 있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최순권 학예연구관은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허리를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훌륭한 자료와 좋은 전시를 위한 훈장으로 여겼다.

 

“저는 역사 전공자이다 보니 문헌이나 고문서를 좋아합니다. 그런 유물을 직접 대하며 당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행복했지요. 다들 힘들겠다고 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늘 고민되는 것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고문서를 어떻게 하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건 앞으로도 계속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가족전시관에서 진행중인 ‘풍산 류씨 가족 이야기’전과 연계된 전시로, 9월 30일까지 기획전시실Ⅱ에서 열린다. 징비록 초본은 8월 31일까지만 공개된다. 부디 류성룡이 남긴 간절한 마음을, 느껴보길 바란다.

 

01_slide_jingbi_img
02_slide_jingbi_img
03_slide_jingbi_img
04_slide_jingbi_img
05_slide_jingbi_img

 

|특별전 <징비록> – 바로가기
|우리집 가계도家系圖, 내가 한 번 그려볼까?_ 최순권 학예연구관 인터뷰 – 바로가기
글·영상_ 편집팀

3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민속박물관 이메일을 통해 지금 징비록 원본이 전시 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8월 30일 일요일에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꼭 가야겠네요.
    임진왜란과 이순신장군에 대해 책을 통해 알고 있는 것과 아이 아빠가 보는 ‘징비록’ 드라마를 통해 아는 것이 전부인지라
    실제 징비록을 보고..실제로 사용한 투구와 말안장 등을 보면 정말 좋아할 것 같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03045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대표전화 02-3704-3114    팩스 02-3704-3113

발행인 천진기    담당부서 섭외교육과  © 국립민속박물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