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의 주인은 누구인가

최인호 <타인의 방>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언제부터 한국 소설에 등장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나는 최인호와 박완서 같은 작가가 1970년대에 쓴 소설에서 아파트가 나오는 것을 읽고 자랐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획기적인 건축 양식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1962년 준공된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포와 정릉, 여의도와 반포와 압구정, 강남과 잠실이 개발되고, 한강변을 둘러싸고 아파트들이 세워진다.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에 따르면, ‘시민’이라는 수식어를 단 아파트, ‘시범’이라는 수식어를 단 아파트, ‘맨션’이라는 수식어를 단 아파트로 갈리는 것 같다. 그는 시민 아파트를 “도시 빈민의 집단수용소 용도”로, 시범 아파트를 “실험적인 형태의 아파트”로, 맨션은 “젊은 중상류층을 위한” 곳으로 유형화한다.박해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모음, 2011년

 

최인호는 1971년에 「타인의 방」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아파트에 사는 한 중산층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아니다.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읽다가 주인공은 이 남자가 아니라 아파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좀 타협한다면, 남자가 주인공이었다가 아파트가 주인공으로 바뀌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람은 사물화되고 사물은 생명을 얻게 되는 이야기랄까?

 

내 생각이 억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어느 아파트의 오후, 한 남자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초인종을 오 분쯤 누르다가는 급기야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옆집에서는 잠을 깬 아이가 울고,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와 무슨 일인지 본다. 이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인 것 같다. 용기 있는 주민들이 나서서 무슨 일인지 묻는다. 남자는 여기가 자신의 집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삼 년 동안 살아왔지만 당신 같은 남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남자는 열쇠를 꺼내더니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열쇠가 있는데도 이 남자는 왜 그러고 있던 걸까? 가부장적인 남자인 것 같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처지인 아내는 응당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장이 돌아올 때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남자일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없다. 편지가 있다. 친정아버지가 위독하니 잠시 다녀오겠다며 편히 쉬라고 한다. 이 남자는 편히 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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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심한 고독을 느꼈다.
그는 벌거벗은 채, 스팀 기운이 새어나갈 틈이 없어 후텁지근한 거실을,
잠시 철책에 갇힌 짐승처럼 신음을 해가면서 거닐었다.
가구들은 며칠 전하고 같았으며 조금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트랜지스터는 끄지 않고 나간 탓에 윙윙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 남자가 편히 쉬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쉴 새 없이 투덜거리며 집안을 배회하고 탐사하고 심문한다. 구멍 난 스타킹, 아내의 다리를 조이는 고무줄, 종이처럼 딱딱해진 빵 몇 조각이 보인다. 보고 싶은 신문은 찾을 수 없고, 날짜까지 나오는 다소 고급형인 시계는 일주일 전의 날짜로 죽어 있다. 그는 아내를 욕하면서 수염을 깎기 시작하고, 얼굴을 베고, 휴지를 상처 위에 우표처럼 붙인다. 샤워기의 더운물을 틀어 수증기가 일게 한 후 그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분말주스 가루를 타먹고 레코드도 듣는다. 거의 강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남자는 왜 그럴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거짓말도 보인다. 남자는 출장에서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돌아왔다. 그는 아내가 자기의 출장 첫날부터 저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불안하면 사물이 다르게 보이지 않나? 며칠 전과 다를 게 없이 보였던 가구들이, 물건들이, 벽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쨌거나 남자는 그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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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슨 소리를 들었다. 공기를 휘젓고 가볍게 이동하는 발소리였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그는 욕실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난폭하게 일어나서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분명히 잠근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제기랄. 그는 투덜거리면서 물을 잠근다. 그리고 다시 소파로 되돌아온다.
그러자 이번엔 부엌 쪽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남자는 벽이 출렁거린다고 느낀다. 크레용이 허공을 날고, 성냥개비가 중얼거리고, 혁대가 물뱀처럼 꿈틀거리고, 꽃병 속의 마른 꽃송이가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린다. 그렇다고 남자는 느낀다. 어쩔 수 없이, 한 부분을 더 인용하기로 한다.

 

ee

잘 들어요.
소켓이 속삭인다. 마치 트랜지스터 이어폰을 꽂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만 사근거린다.
오늘밤 중대한 쿠데타가 있을 거예요. 겁나지 않으세요?

 

산뜻하지 않나? 그래서 더 무섭게 느껴지지 않나?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남자의 다리가 경직되기 시작한다. 다리는 석고처럼 굳고 그는 조용히 다리를 모으고 직립한 채로 굳어진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며칠이 지나 돌아온 아내는 “새로운 물건”을 발견한다.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라 먼지도 털고 키스도 하긴 한다. 나중에는 별 소용이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락 속에 처박는다. 그리고 다시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다. 처음의 편지와 다르게 거기에는 “편히 쉬세요.”라는 말이 빠져 있다.

 

무생물이 생물이 되고, 생물은 무생물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내 방의 주인은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섬뜩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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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소설가. 1945년 서울 출생. 1963년 고등학교 이학년 때 단편 「벽구멍」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작품성과 대중성이 둘 다 있는 작품을 썼고, 7~80년대 청년 문화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장편소설로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이 있다. 2013년 작고했다.
글_ 한은형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장편소설 《거짓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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