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새로고침

홍대 카페 문화 1세대 임태병

다방과 카페는 각자 다른 연관어를 갖는다. ‘다방’을 떠올릴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약속’과 ‘어항’이라면, ‘카페’는 ‘일상’과 ‘노트북’이 아닐까. 하지만 두 공간은 모두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는 공통의 연관어를 갖는다. 물론 ‘차’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공간과 문화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14년 전, 홍대 앞 카페 오픈과 함께 카페 문화의 시작을 알린 임태병 소장을 만났다.

 

 

공간에 공유를 더하다

홍대에는 지금의 카페 문화의 원조쯤 되는 카페가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4명의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음악을 들을 공간을 찾아 집이며 교회, 카페 등지를 전전하다가, 결국 직접 만든 카페다. 그러다 어차피 내는 월세, 커피라도 팔아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일이 커졌다. 이들의 취향이 지금의 카페 문화의 시작이 된 것이다.

 

“당시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고 있던 저는 ‘공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 일상에는 모두가 함께 쓰는 공동의 공간퍼블릭 스페이스, Public space이 흔치 않아요. 그렇다면 카페를 일정한 금액을 내고 공간을 점유하는 개념으로서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이곳은 공동 테이블의 붐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카페에 8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을 들인 것은 일종의 실험이었다. 놓으면서도 누구도 앉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테이블의 한 조각씩을 차지했고, 마침내 8개의 의자에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 앉는 날이 왔다.

 

“홍대 앞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곳 사람들의 남다른 감수성이 새로운 형식을 흡수할 수 있었던 거죠. 당시의 홍대에는 아티스트들이 원룸이나 작업실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카페를 찾았고, 여기서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곤 했죠.”

 

예전의 다방이 주로 약속에 의해 만나고, 논의를 하고, 영업을 벌이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면, 카페는 굳이 약속 없이도 들르고, 책을 읽고, 사적인 업무를 하다가, 나처럼 그 카페를 찾는 이들과 연결이 된다. 즉, 사생활의 확장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그럴수록 그들이 혼자 점유할 공간은 협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를 나의 거실로 여기게 되는 거죠. 일은 이 카페에서 하고, 밥은 저 식당에서 먹고. 앞으로는 집에서 집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큐브에서 큐브로의 이동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요. 즉 ‘집’의 개념보다는 ‘방’의 개념이 앞선다는 것이지요.”

 
 

일상에 상상을 더하다

그는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을 찾았을 때의 충격에 대해 회상했다. 미술관에 레스토랑과 카페, 서점이 있다는 것을 보고 이보다 더 일상적인 공간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밥 먹으러, 차 마시러, 책 사러 가는 곳이 ‘미술관’이라니.

 

“그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카페에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운영중인 카페 옆집에 한의원이 입주했어요. 그랬더니 카페를 이용하는 고객 연령대가 달라지더라고요. 한의원에 침 맞으러 오신 어르신들이 잠깐 들러서 차 한 잔 하시는 거죠. 그렇게 그 분들에게는 또 하나의 일상의 공간이 늘어난 거고요.”

 

임태병 소장은 카페를 ‘결합하기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정의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음악카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북카페, 퍼즐을 즐길 수 있다면 퍼즐카페 등 특수한 아이템과 결합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팝을 들을 수 있는 음악다방이 붐이었어요. 그곳에 가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판매 금지된 앨범도 그곳에 가면 들을 수 있었어요. 음료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콜라 한 캔으로 열 시간을 버텨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죠. 그러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죠.”

 

지금이야 길을 걷다가도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 들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80년대까지만해도 그런 일은 공상만화에서나 볼법한 이야기. 마음먹고 음악다방을 찾은 날은 몇 시간이고 음악에 푹 젖어있다 나오곤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어깨를 타고 음악은 번졌고, 음악 시장을 성장케 하는 원동력 되었다.

 

문화와 긴밀하게 만나고, 무엇을 해도 잘 어울리는 중성적인 곳. 누군가의 일상이면서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장소. 카페는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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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의 ‘약속다방’.
과거 다방의 인테리어, 소품, 메뉴판 등을 재현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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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카페에서는 큰 테이블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옆에 모르는 사람이 앉아도 어색하지 않다. 사진 임태병

 
 

사람에 이야기를 더하다

“카페가 문을 열고 14년 동안 거쳐간 스탭들이 5~60명 가량 됩니다. 카페의 스탭이라 하면 보통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친구들인데, 시간이 지나 직장에 취직을 해도, 긴 유학을 다녀와서도 꼭 찾아와요. 그 네트워크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스탭들과 함께 카페의 12주년을 기념하는 홈커밍 전시를 열었다. 또 마음이 맞는 스탭들과 ‘어쩌다 가게’, ‘어쩌다 집’ 등 협동조합 형태의 공간을 마련해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카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가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공간이 가진 무게’라고 칭했다.

 

“공간은 역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통의동의 보안여관이나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다방 등은 장소를 보존하는 것에 의의 두고 있지 않아요.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모였고, 또 그들이 이룬 관계를 보존하고자 하는 거죠.”

 

그의 말처럼 여관으로 태어났던 보안여관은 현재 복합 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되었고, 제비다방은 유지되거나 복원되지는 못했지만 작가 이상이 살았던 터를 개조해 ‘이상의 집’이라는 부제로 그를 추모하고, 때로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나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갈증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지금도 사람들은 카페에서 다양한 일을 한다. 전시를 열기도 하고, 모임의 행사를 갖기도 하며, 세미나나 공연을 개최하기도 한다. 장르와 규모를 초월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카페인 것이다.

 

“공간의 이름은 달라도 그 속을 채우는 것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죠. 그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결코 누군가의 의도나 계획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카페 문화가 가진 ‘일상’과 ‘자발적’이라는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원천적인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앞으로 홍대를 카페거리로 만들자’고 작정하지 않았다. 누가 ‘이제부터 찻집은 다방이 아니라 카페라 부른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다만 시대의 흐름이 그러했고, 시장의 판도가 그러했을 뿐이다.

 

혼자 앉아있어도, 둘 혹은 여럿이 앉아있어도 모두 어색하지 않은 공간. 우리는 다방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사람들의 고독을 엿보았고, 숱한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 공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책을 읽을 테고, 사람을 만날 테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카페일 거다. 지금껏 그래왔듯.

 

임태병
건축가, SAAI건축 공동대표. A.I.건축연구소, 옴니 디자인, 양진석 건축연구소 등에서 건축설계와 인테리어를 담당하며 공간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음악 듣고 책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그는 카페 B-hind의 메뉴와 디자인 부분 맡았다. 현재는 ‘어쩌다 가게’, ‘어쩌다 집’을 통해 마음 맞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글·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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