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판타지와 현실 사이

건축가 김광수

건축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따라서 건축언어에는 한 시대의 삶의 양식이 철저히 반영된다. 이러한 삶의 양식은 곧 민속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시대에 관심을 갖고 기록해야 마땅한 건축과 그 속의 생활양식은 무엇일까? 이전 한옥 시대의 골목길 같이 활기찬 소통의 공간, 자생적 생명력이 넘치는 주거공간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마음에 담고 이태원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에서 건축가 김광수를 만났다.
헤테로토피아*1의 공간, 근린생활시설

건축가 김광수는 ‘뒤죽박죽 근린생활시설, 퍼블릭스페이스를 대신하는 노래방과 찜질방의 방 문화, 정다운 다가구 주택’을 우리가 민속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건축으로 손꼽았다.
폭 70m가 넘는 강남대로와 테헤란로의 최첨단 하이 라이즈*2는 삶의 공간이라기보다 보여주기 위한 관리된 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일종의 연출된 공간이다. 오히려 우리는 실제 삶이 있는 그 바로 뒤의 폭, 3m에 달하기도 하는 좁은 골목과 그곳의 건축언어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좁은 길들에 들어서 있는 건축물은 대부분 근린생활시설이라고 불린다. 이 건축유형은 원래 주거지 즉, 근린영역을 보조하는 시설로서 이름 붙여졌지만, 강남대로 등의 이면은 근린성이 있는 주거지라기보다는 대중들의 소비공간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거주공간과 소비공간이 구분 없이 섞이면서 독특한 건축의 형태가 생성된 것이다. 아파트 상가와 같은 근린생활시설도 이에 속한다. 자투리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우리 도시의 한 축을 차지한 ‘소비공간’은 우리의 24시간 불야성 문화, 빨리빨리 문화를 반영한 가장 한국적인 건축형식이자 언어이다.

“현대 도시를 지배하는 모더니즘 건축언어는 모든 공간에 이름표와 역할을 붙이는 Zoning System입니다. 그런 방식은 우리 환경과 정서에는 맞지 않았죠. 토지가 부족한 밀집된 도시에서는 구현하기도 힘들고 사전에 계획된 도시도 아니니까요. 모더니즘 건축가인 미스 반데로에Mies van der Rohe*3가 말한 ‘Less is More덜어낼수록 좋다‘는 1980년대부터 아파트 단지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들어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로 유명한 로버트벤추리R.Venturi*4는 이를 ‘Less is Bore’ 즉, 단순할수록 지루하다고 비판했었죠. 어떻게 보면 아파트건축의 지나친 단조로움이 근린생활시설이라는 뒤죽박죽의 공간을 만든 것이고, 이 시설들은 일종의 억압된 욕망의 배출구와 같은 것이었다고 봅니다.”

아파트 상가를 예로 들어보자. 건물 1층에는 편의점과 은행이, 2층에는 요가학원과 식당이 들어와 있고 3층에는 독서실과 병원이 있다. 지하공간에는 노래방과 단란주점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 옥상에 교회 첨탑이 있으면 건축의 완성이다. 모더니즘의 시각에 익숙한 도시 설계자와 건축가에게는 참 흥미로운 뒤죽박죽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모습이 너무나 편안하고 당연하다. 하나의 건물에 기대하지 못했던 재미가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모습이 우리의 현재 ‘소비공간’으로써의 건축의 전형이다.

“전형적인 헤테로토피아Hetropia입니다. 급변하는 도시 공간은 활기와 생명력이 넘치게 되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럭저럭 타협하며 편리하고 재미있게 살아갑니다. 그게 근린생활시설 속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필지의 90% 이상이 60평180㎡ 이하 규모입니다. 큰 건물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요. 고만고만한 소비공간들이 주거공간과 자연스럽게 섞여 배치될 수밖에요. 그게 우리만의 독특한 건축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는 ‘우리 건축은 가설건축물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건물의 외관이나 건축의 품질보다도 최대한 빨리 전용면적을 확보하려다 보니, 설계 단계에서 ‘매우 중립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는 뜻이다.

“중립적이란 어떤 용도로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란 좋은 뜻도 있지만, 매력이나 개성이 전혀 없는 밋밋한 공간이란 뜻도 됩니다. 외관을 아무리 잘 지어도 간판으로 도배될 것이고, 좁은 공간을 더 좁게 나누어 쓰려면 내부 치장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죠. 그리고 외부와 내부의 형식적 일치를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내외가 따로 노는 것이죠.”

‘가장 낮은 가격으로 가장 넓은 전용면적을 빼는 건축언어.’ 삼류도 이런 삼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이 건축물은 자생적인 힘으로 성장하고 진화하게 된다. 그런 발전상이 독창적이고 흥미롭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는 모든 외국의 건축가들이 동의하는 점이다. 그래서 기존 건물도 15년 정도 지나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새로운 공간 역시 변화를 반영하게 된다. 건축에서는 이런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도 매우 큰 가치가 있는 역사가 된다.

광장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방 문화’

“현재 우리 도시에는 광장 혹은 퍼블릭 스페이스가 따로 없습니다. 그 대안으로 ‘방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우리에게 광장 혹은 퍼블릭 스페이스란 토목공사의 부산물이다. 쓰레기를 쌓아 올려 만든 난지도, 홍수대책으로 만들어진 고수부지는 모두 도시 생활의 부산물이 가꿔지면서 퍼블릭 스페이스가 된 사례이다. 우리 도시에게 공간의 여유란 사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퍼블릭 스페이스를 대체할 수단을 만들어 냈다. 바로 ‘방 문화’이다. 노래방, 찜질방, 룸살롱이 방 문화의 절정이다. 우리는 방안에서 놀고, 먹으며 사교한다. 이 역시 우리만의 민속이라 할 수 있다. 방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판타지를 쌓아 나가게 되었다. 광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우리는 역으로 건축물의 최소 단위인 방안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건축에는 공간에 대한 판타지가 반영되게 됩니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에서 우리 사회에 부재한 자유의 공간인 광장을 갈구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은 판타지가 허락되는 광장이 필요하죠. 하지만 물리적으로나 사회 통념상 이런 공간이 공공연하게 허락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판타지를 가슴에 안고, 타인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어두컴컴한 방으로 틀어박히게 된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방 문화’입니다.”

자유의 광장을 대신하는 ‘방’ 역시 근린생활시설만큼이나 역동적이고 활기차다. ‘방’은 주로 근린생활시설에 들어선다. 방이 주는 이미지 자체는 음습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는 흥미롭다. 이런 탈 일상적 행위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방식이나, 방 자체의 진화 속도와 창발적으로 확장되는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이미 판타지를 해소하기 위한 ‘방’에 대한 추억이 있지 않은가?

“판타지를 방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우리 건축, 특히 생활공간의 인테리어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집은 판타지 혹은 유토피아가 결집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축과 연관된 우리의 판타지를 기록하는 일 역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될 듯합니다.”

다가구 주택의 매력

“서울 속도라는 말이 있어요.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짧은 공기로 건축하는 나라가 없거든요. 이게 좋은 말이 아닙니다. 공기만 맞추면 품질이야 어찌 되었든 좋다는 뜻이 깔려 있거든요. 건축 쪽에서는 ‘지을 때부터 부술 걸 각오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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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성장의 속도전이 가져온 부실의 피해는 건축에도 그대로 전해져, 와우아파트와 삼풍백화점 참사를 낳았다. 이런 건축문화가 가져온 또 다른 사생아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다가구 주택이다. 1990년대 노태우 정권이 200만 호 주택건설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파트 못지않게 다가구 주택이 많이 지어졌다. 부족한 공간에 집을 지어야 해서, 주차장 면적 확보 같은 많은 규제를 풀어가면서 진행된, 무리한 부동산 정책 사업이었다.

“다닥다닥 언덕길 양쪽으로 늘어선 다가구 주택은 우리나라만의 주거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공간이 참 흥미롭습니다. 외국에도 중소 규모의 공동 주택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처럼 자생적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은 아닙니다. 우리가 한옥에 주목하고 관광상품화 하는 것처럼, 다가구 주택 밀집 지역이 주목받는 시간이 곧 옵니다.”

최근 들어 우리는 도시를 관리 공간화 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간판을 획일적으로 정비하고 건물 외관의 미관 심의를 통해 형태마저도 관리한다. 거기에 특정 상표가 공간을 지배하는 브랜드스케이프Brandscape*5를 고급스러움의 대명사로 이해하는 천박함이 더해져 가고 있다. 이렇게 된 도시의 건축물은 개성과 재미가 없어진다고 그는 경계의 말을 했다.

“저는 개념화 되기 전의 자생적인 공간에 매력을 느낍니다. 삶의 터전이 정이 없어지면 가상적 생명력만 남게 되고 거기에 인간적 매력 역시 죽게 되니까요. 제가 예를 든 근린생활시설, 방 문화, 다가구 주택은 한국 특유의 건축양식으로 중요합니다.”

결국, 김광수 건축가가 이야기한 민속으로 보아 합당한 건축의 공통분모는 주였다. 우리가 먹고, 입고, 잠자는 곳.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작은 공간들. 이 시대 한국인들의 몸과 마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그 곳, 그 곳에 대한 관찰과 기록은 바로 민속이 될 것이다.

건축가 김광수 | studio_K_works 대표
‘studio_K_works’ 대표. ‘집담공간 CURTAINHALL’ 공동운영. 연세대학교 및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 졸업. 협업을 지향하며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 대중 그리고 공간사용자들의 참여와 관계성을 유도하는 작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뉴미디어매체에 의한 사회성 및 건축환경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주요 전시 및 작업으로는, Museum of Cultures, Vienna, 2013, <철새협동조합전>아트선재 라운지프로젝트, 2012, <건축한계선>문화역서울284, 2012, <도시부족을 위한 공동주거>관훈갤러리, 2009, <100개의 알 수 없는 방>서울시 도시갤러리사업, 2008, <방들의 도시>Venic Biennale, 2004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철새협동조합’, ‘느림의도시 순천’, ‘서울_도시와 건축’, ‘Germany-Korea Public Space Forum’, ‘City of bang’ 등이 있다.

글_ 편집팀

*1 헤테로피아Heteropia, 철학자 미쉘 푸코Michel Foucault는 저서 『사물의 질서, The Order of Things, 1973』에서 호모토피아Homotopia와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를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호모토피아는 기존의 통일성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을 강조하는 반면, 헤테로피아는 혼란 속의 질서,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방법을 의미한다.
*2 하이라이즈High Rise, 초고층 빌딩, 초고층 아파트의 통칭
*3 미스 반데로에Mies van der Rohe, 독일 출신 20세기 건축가, 유리와 철골 구조를 이용한 간결한 건축 양식이 특징
*4 로버트벤추리R.Venturi, 1920년대 미국의 건축가. 근대 모더니즘적 건축의 모순을 지적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1966건축의 복합과 대립』으로 유명하다.
*5 브랜드스케이프Brandscape, 상표풍경으로도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대형 커피체인, 의류매장 등과 같이 상표로 대표되는 서비스 들이 우리 삶의 공간을 차지하여 획일화 된 도시경관을 만들어 내는 현상의 뜻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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