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우리 그림이 수출되었다고?

서양인들을 위해 그려진 조선의 그림들

17세기 이후,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상업의 활성화는 동서양의 활발한 교류를 가져왔다. 유럽은 동양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그 문물을 받아들였고 차, 도자기, 비단 등을 중심으로 많은 물품이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음악, 복식, 문학, 미술 등 예술 분야에서 ‘중국 취미Chinoiserie’를 불러일으킬 만큼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동양을 방문하는 서양인들의 수가 점차 증가했다. 조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문호를 개방한 이후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에는 선교, 탐험, 조사 등 여러 목적으로 서양인들의 왕래가 잦아졌다. 이들은 한 번 방문할 때마다 몇 달씩 머물면서 한양뿐 아니라 전국 각지를 여행했다. 그동안 외부에 닫혀있던 조선의 풍속은 이방인들에게 매우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어찌 보면 오지 여행과도 같았을 낯선 땅에서의 이들의 여행은 그들이 여행 중에 찍은 사진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더구나 이들이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여행기념품들이 국내에 다시 알려지면서 뜻밖의 자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들이 남긴 사진은 가장 대표적인 자료의 예가 되겠지만, 이에 못지않은 자료의 가치를 가진 것이 바로 풍속화이다. 미지의 나라 동양에 들렀던 서양인들이 그곳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사 갔던 그림들이다.

 

독일인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868~1945는 보병 중위 신분으로 1905년 주일본 독일대사관 무관으로 임명을 받아 동양에 오게 된다. 그는 본국의 명령으로 러일전쟁의 주요 격전지에 대한 조사를 위해 여행을 하던 중 1906년 9월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한국에 대해 남다른 인상이 남은 그는 이후 한 차례 더 한국을 방문해 많은 기록과 사진, 기념품을 가져간다. 그는 1907~8년 한국인 화가에게서 각 50엔독일화 105마르크에 풍속화첩 두 권을 사갔다. 시장의 장수, 다양한 복식을 입은 조선인, 여름낚시풍경 등 인물과 풍속 그림 100점이 실려 있는 이 화첩에는 그의 눈에 신기하게만 보였던 조선의 인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화첩과 그의 여행사진들은 100여 년이 지난 2006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되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에게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팽이를 가지고 노는 모습.
김준근 작(모사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29266-00-27

헤르만 산더가 구입해 갔던 조선 풍속화첩 가운데
‘쌍륙’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소개하는 그림.
1907년, 작자미상,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러한 풍속화들은 헤르만 산더가 조선을 방문하기 이전부터 개항장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다.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기산 김준근金俊根은 원산, 부산 등의 개항장에서 풍속화를 제작해서 외국인에게 판매했다. 그는 당시 주류화가도 아니었고, 역량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글로벌한 지금의 시점에서 그 만큼 글로벌한 작가도 없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천여 점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어, 가장 많은 작품이 외국에 소장되어 있는 개별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서양인들이 우리 풍속을 그린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시장의 흐름을 재빨리 파악하고 이른바 블루오션을 잡았던 화가였다. 그림의 유통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는 근대적 미술 문화를 개척했던 작가로 평가 받기도 한다.

 

그림을 수출하는 이러한 현상은 중국과 일본이 앞섰는데, 중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등에 서양인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들의 수요에 맞춘 그림들이 제작되고 판매되었다. 나라별로 그려진 그림의 종류는 달랐지만 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놀이, 상장례, 형벌 등 사회풍속을 소재로 한 그림이 주류를 이루었다. 중국의 경우는 광저우, 닝보 등 지역에 수출용 그림만을 다루는 공방제품들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본격적인 수출을 목적으로 제작한 그림은 아니었으나 주로 서양 고객을 위해 대량 제작된 것들이라는 점과 백 여 년이 지난 지금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 조선의 당시 풍속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수출화의 역할을 해 냈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은 주된 소재가 풍속을 알리거나 설명하는 내용으로 마치 도해하듯이 장면을 그리고 설명을 달아 도감의 성격을 지닌다. 부산초량, 인천 원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거래되었으며, 작가 자신의 관심사를 그린 것이 서양인들의 손에 넘어 갔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서양인들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그려진 것들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비록 지금의 수출 개념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그림들이 해낸 역할은 물질적 재화로서의 의미 이상으로, 문화를 수출한 선구적인 예라 할만하다.

 

참고문헌)
신선영2012, 「箕山 金俊根 繪畫 硏究」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청구논문
김수영2009, 「수출회화로서 기산 김준근箕山 金俊根 풍속화 연구」, 『미술이론과 현장』
정병모2006, 「기산 김준근 풍속화의 국제성과 전통성」, 『講座美術史』 제26호, 한국미술사연구소
 
글_ 김윤정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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